<분수대>대통령과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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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워싱턴 관가(官街)의 관행(慣行) 가운데 우리 눈에 돋보이는 것중 하나가 대통령과 장관의 관계다.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그러나 상원에서 인준을 받아야 취임할 수 있다.장관에 지명되면 모든 개인적.공적(公的) 행적이 들춰지고 청문회과정에서 철저한 「여과」를 거친다.대통령 마음대로 아무나 장관에 앉힐 수 없는 점이 우선 다르다.
장관의 취임때보다 그만둘 때가 더 인상적이다.대통령이 그만두는 장관과 함께 국민들앞에 나타나 그만두는 이유와 아쉬움,그리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떠나는 장관도,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기분이 좋다.
크로아티아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한 론 브라운 미 상무장관은 클린턴진영의 한 핵심참모였다.개인적 애도의 정(情)도 각별했겠지만 이를 넘어 공인으로서 순직한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자세가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해 운구와 장례의식이 끝난 그날 밤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이 치솟았다.당장 선거가 실시된다면 클린턴에게 표를 찍겠다는 사람이 52%로 공화당의 봅 도울(42%)에 대해지금까지 최대의 격차를 벌렸다.
생존자가 없다는 보고를 접하자 클린턴 부부는 부통령및 다른 각료들과 함께 바로 상무부를 찾았다.강당에 모인 상무부직원들에게 그는 『브라운장관 집에서 오는 길이다.「지금 상무부로 가는데 부인께서 전할 말씀이 있으시냐」고 브라운장관 부인에게 물었다.부인은 그 경황에 「남편이 직원들을 좋아하고,그들을 믿고,상무부를 위해 싸웠다며 이제는 여러분이 그럴 차례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오히려 부탁했다』고 전했다.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공화당측의 상무부 폐지주장에도 아랑곳 없이 브라운장관은 미국기업들을 돕는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해외로 나돌았다.클린턴은 백악관 뜰에 브라운장관을 추도하는 나무까지 심었다.기업중역등 33명의 죽음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국제적으로 되새겨 주고 있다.
장관에 대한 「대접」이 우리로서는 새삼 부럽다.재목이 안되는장관에다 툭하면 전격해임,게다가 떠나는 이는 언제나 말이 없다.장관들이 1회용 소모품이나 정치적 속죄양으로 하대(下待)받는한 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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