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쟁점><나의의견>에로비디오物 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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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아주 극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외설과 에로.음란사이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외설과 에로는 암시적일 수 있는 반면 음란성 상품은 암시성의 완벽한 제거를 조건으로 한다.조악성의 수준에서도 그런 차이는 존재한다.외설과 에로가 어떤 형태의 품위를유지할 수 있다면 음란물은 그 조악성과 조잡성이 높을수록 상품성을 획득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람은 성장기의 어느 한 시점에 외설물에 대한 높은 호기심을발동하는 때가 있다.정상적인 경우 그 호기심은 몇번의 상품 소비경험과 함께 사라진다.이른바 「포르노 졸업기」가 오는 것이다.외설에 대한 소비욕구를 단시일에 충족시킴으로써 졸업기를 앞당긴다는 것이 외설상품의 사회적 기능이다.외설이건 에로물이건 음란물이건 간에 어느 사회도 그것들의 완벽한 제거를 시도할 수 없고 또 시도할 필요도 없다.그것들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인 문화인구의 상당수가 지속적으로 음란물의 정기적 중독성 소비자로 남을 때다.요즘 아파트촌 등에서 불티나게 대출되고 있다는 「야한」비디오들은 그 대부분이 조악하고 조잡한 음란성 영상 상품들이다.이는 우리 성인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여가생활 수준.취향.문화 향수력에 상당한 궁핍과 왜곡이 발생하고있다는 증거다.
한국인의 생활세계에 「문화」는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가.우리에게 먹고,마시고,노름하고,노래방 가고,TV보고,비디오빌려다 보는 것 이상의 「생산적」 문화생활이 얼마나 있는가.음란성 상품의 소비확대는 문화에 대한 우리사회의 투자빈곤과 무관심이 초래한 결과의 하나가 아닐까.신도시를 설계하면서 문화용지.공간.시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오랜 습성이자 관행이다.시민의 문화적 역량은 길러지고 함양되는 것이지 자연발생적인것이 아니다.우리의 교육과정에서 소위 「문화교육」이라 부를만한교육이 얼마나 있는가.음란성 상품의 범람이라는 문제는 이처럼 개개 소비자의 취향이라는 문제외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근원적인 삶의 왜곡요인들을 보게 한다.
도정일 경희대 영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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