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보도 2년 만에 ‘꿈같은’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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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테 홍 할머니가 평양에서 남편 홍옥근씨를 만나기까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레나테는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던 1961년 북한 당국의 동구권 유학생 소환령에 따라 당시 북한 유학생 남편 홍옥근씨와 예나역에서 생이별했다. 청년 옥근은 후일 다시 만나자며 당시 임신 8개월째의 아내 레나테와 10개월 된 맏아들 현철을 남겨두고 떠났다. 이후 레나테는 47년간 수절하며 두 아들을 키웠고 남편과의 상봉을 꾸준히 시도해 왔다. 그러나 번번이 동독 정권과 북한 측이 냉담한 반응을 보여 부부 상봉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독일 통일 이후 최근엔 독일과 북한이 수교해 관계가 정상화됐지만 레나테 할머니의 가족 상봉의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관계기관에선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독일 국민조차 70대 동독 출신 노인이 간직한 이산가족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11월 14일부터다. 본지의 첫 보도 이후 이어진 한국과 독일 언론의 속보로 레나테 할머니의 이산가족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독일 외무부, 국제적십자사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결실은 지난해 2월에 나왔다. 홍옥근씨를 찾으러 평양에 간 적십자사 직원과 독일 대사관 측은 생이별 46년 만에 홍옥근씨의 생존 사실을 밝혀냈다. 또 지난해 8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앙일보 초청으로 레나테 홍 할머니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AP·AFP·dpa·로이터·블룸버그 등 5대 통신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더 타임스, 가디언 등 세계적인 유력 매체들이 레나테 할머니에 관한 취재 경쟁에 앞다퉈 나섰다. 국내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대다수 일간지와 지상파, 케이블 방송, 인터넷 포털까지 레나테 할머니의 사연을 집중 보도했다. 국내외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에 레나테 할머니의 상봉을 이뤄 주자는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6년 5월에 이어 또다시 레나테 할머니를 접견한 후 “상봉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며 격려와 성원을 보냈다.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홍옥근씨로 하여금 레나테 할머니 일가족의 상봉을 허락한 배경에는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나(독일)=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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