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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스 원 탄다는 것, 그것은 ‘역사의 증인’ 된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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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일 오후 1시쯤(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대기 중인 활주로는 셔틀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간 후 3단계의 삼엄한 보안검사를 거친 뒤에야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검색대 스크린을 거친 짐을 잘 훈련된 탐지견이 다시 훑고, 특수복을 입은 요원들이 또 한 번 샅샅이 뒤졌다.

활주로에서는 검문을 통과한 후 대기 중이던 외신 기자들이 미소를 띠며 맞아줬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중앙일보 특파원”이라고 답하자 “에어포스 원은 첫 탑승 아니냐. 축하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


1시30분쯤, 부시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와 딸 바바라 일행이 탄 검은색 SUV 6대가 경찰차 3대의 호위를 받으며 활주로에 나타났다. 그리고 몇 분 뒤 부시 대통령이 탄 ‘마린 원(미 해병대 1호기)’ 헬기가 에어포스 원과 수직 방향으로 내렸다. 도열한 공군 장성들이 일제히 경례를 했다. 부시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트랩을 오르자 기자들도 서둘러 날개 뒤쪽 트랩으로 탑승했다. 2~3분이 흘렀을까. 안전벨트를 매라든가 이륙한다는 안내 방송도 없이 에어포스 원이 활주로를 박찼다. 에어포스 원이 고도 1만m 상공에서 시속 880㎞로 정속 운항에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기자석에 나타났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이었다.

“웰컴”을 연발하던 그는 기자를 보자 “한국 특파원의 탑승을 환영한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바로 말해달라”며 웃었다. “요즘 한국에 미국산 쇠고기가 잘 들어오느냐. 시위는 그쳤나”라며 한국 상황에 관심을 표시하더니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한국 측은 어떻게 알았는지 늘 햄버거를 내놓더라. 대통령이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웃었다.

에어포스 원 탑승 기자석은 오른쪽 날개 뒤쪽에 자리 잡은 14석짜리 좁은 공간이었다.워싱턴 포스트(WP), 뉴욕 타임스(NYT)와 AP·AFP·로이터 통신 등 메이저 외신 기자 11명과 한국 기자 2명 등 모두 13명이 탔다. 좌석은 비즈니스석 크기지만 노트북과 카메라 등 취재장비들이 주변을 가득 메워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기자석 뒤쪽에는 전원과 비상전화가 갖춰진 데스크 2개가 있지만 운항 중에는 전화나 인터넷은 작동되지 않았다. 기자석 앞과 옆 공간에는 비밀경호원들이 타고 있고, 그 앞 공간은 백악관 참모진 회의실인데 기자 출입이 금지돼 있었다.

결국 좁은 기자석에 꼼짝없이 고립됐다. 전용기 안을 마음대로 거닐며 취재해 보겠다는 꿈은 보기 좋게 깨졌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한반도 정책을 총지휘하는 데니스 와일더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태평양지역 선임 보좌관이 탑승 기자들만을 상대로 브리핑을 해줬다. 그는 특히 부시 대통령의 첫 방문지인 한국을 대상으로 20분 가까이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태 지역 40여 국가를 전담하는 그에게 한국 관련 질문을 20개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건 에어포스 원 탑승이 준 특권이었다. 특히 이번 방한에는 와일더의 상관이자 백악관의 외교안보정책을 총지휘하는 스티븐 해들리 안보보좌관이 불참해 와일더의 발언이 주는 무게를 더했다.

한국 언론과 좀처럼 접촉하기 힘든 로라 부시 여사의 대변인 샐리 맥도너도 잠시 후 기자석을 찾아왔다. “중앙일보 특파원”이라고 소개하자 “아, 한국에서 온 기자분이냐”고 반가워하면서 “로라 여사가 서울에서 김윤옥 여사와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의 멋진 박물관을 방문할 계획도 있다”고 귀띔했다.

에어포스 원에 탑승한 기자들의 한결같은 목표는 ‘넘버 원’(부시 대통령)의 기내 집무실에서 단독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자들은 기내에서도 공보담당관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벌인다. 이날은 WP의 마이크 아브라모비츠 기자가 이륙 직후 부시 대통령에게 선택돼 첫 번째 비행 구간(워싱턴∼알래스카)에서 인터뷰를 하는 행운을 누렸다. 백악관 측은 기자에게도 “대통령의 한국 방문길인 만큼 비행 중 인터뷰 기회를 알아보겠다”고 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에어포스 원에 탑승한 또 하나 특권은 부시 대통령의 방한에 동행한 한반도 담당 미국 고위 관리들도 즉석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어포스 원이 급유를 위해 2시간가량 기착한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에이엘슨 공군기지 활주로에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날 수 있었다. 미소를 띠며 기자를 맞은 그는 “서울에선 아직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독도 표기와 관련해 멋진 결정(원상복구)을 내려, 한국에서 (미국의) 인기가 좋다”고 돌려 답하자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 검증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테러지원국 해제가 늦어질 수도 있다고 와일더 보좌관이 기내 브리핑에서 말했다”고 전하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는 “북한이 계속 검증 요구를 거부하면 테러지원국 해제가 (예정일인 8월 11일보다) 며칠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과 계속 대화 중이니까,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한국 언론 초유의 에어포스 원 탑승에 대해 페리노 대변인은 “고든 존드로 NSC 부대변인이 부시 대통령의 세 번째 방한길에 한국특파원을 태우자는 의견을 냈다. 귀중한 동맹국인 한국의 언론에 부시 대통령 방한 취재를 좀 더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아이디어였다. 마침 기자석에 2석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한국 언론 중 영향력 있는 매체를 고른 끝에 중앙일보를 초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5년간 수십 차례 에어포스 원을 탔다는 제러미 펠로스키 로이터 통신 특파원은 기자에게 “처음 에어포스 원을 탔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보이는 것, 만지는 것이 다 기사거리 같았다”며 “지금도 에어포스 원 탑승은 내게 최고의 기분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면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방문국에 내리면 곧바로 우리가 따라간다. 늘 취재에서 우선권이 있다. 운이 좋으면 기내 인터뷰 기회도 생긴다. 이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이번이 두 번째 탑승이라는 블룸버그 통신의 마이클 포사이스 기자는 “한국 언론도 중앙일보를 필두로 첫 물꼬를 튼 만큼 앞으로 미국 대통령과 그 전용기에 더 많은 접근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포스 원 기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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