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기권은 저질정치의 방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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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5대 총선 투표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아주 저조하리라는 것이 선관위의 예상이라고 한다.7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선진국형 정치무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이번 선거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저질(低質)정치,지역의존적인 구태의연한 3金정치가 중산층의 실망감을 증폭시키고 특히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켜 정치이탈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선택할 정당이 없다는 것이 정치이탈을 가속화시키는 첫 요인이다.선거에 들어가기 전 각당은 이번 선거가 21세기를 준비하는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그래서 세대교체니,새정치니 하는 요란한 캐치프레이즈들을 내걸었다.그러나 개혁 을 주장하는 정당은 구세력을 수용했고,보수안정을 주장하면서 혁신급진론자들을뒤섞었는가 하면 보수세력은 부패분자들을 끌어모으니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게 됐다.
까뒤집기식 폭로전이 정치현상에 대한 환멸을 극대화하는 요인이다.한갓 청와대 부속실장이 수십억원의 떡값을 받았다는 사실이 서민들의 마음을 찢어놓았듯이 수십억원의 공천헌금을 받아 챙겼다는 야당의 현실이 그들의 위장성을 일깨워주었다.다 른 정당,다른 후보의 비리와 무능과 부도덕성을 서로 캠으로써 반사적 지지를 이끌어내려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혐오감만 확산시키는 꼴이다. 그리고 도무지 깨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으로보이는 지역감정이 유권자들을 마지막으로 좌절시킨다.경상도와 전라도에 이어 충청도까지 지역감정의 성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리자이제 선거는 호적(戶籍)캐기 운동으로 격하됐다.
그리고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 선거에 영향을 끼쳐보고자 하는 운동권세력이 다시 설쳐대는 꼴도 정치에 대한 냉소증후를 확산시킨다. 개혁을 지지하고자 하는데 개혁정당은 없고,보수안정을 선택하고자 하는데 진정한 보수는 없고, 미래의 비전을 선택하고자하는데 후보는 지역감정에만 호소하고 있을 때 차라리 기권하고자하는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전반적인 투표율은 낮을지 몰라도 일부지역에서는 오히려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전국구 뒷번호에 배정된 지도적 인물을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하지않으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지역별 투표율에 심한 편차가 나타나 선거 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것이다. 대선(大選)을 치르고 있는 미국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유권자들이 아무 비전을 주지 못한채 정치쇼로 전락한 선거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그 「성난 유권자」들의 향배가 새로운 정치변수로 주목받고 있다.우리의 실망한 중산층과 젊 은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선거를 외면하고 말 것인가.
그러나 기권은 단순히 무관심이나 냉소의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아니라 바로 저질정치를 묵인하는, 아니 그것을 소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된다는 점이다.5공시절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때 일부재야는 기권운동을 전개했다.소극적인 저항이라는 것이었다.그들이투표율을 얼마나 낮췄는지는 불분명하다.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히려 찬성률만 높였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기권은 꼴보기 싫은 것에 대해 얼굴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모래에 머리만 처박음으로써 위험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타조식현상수용일 따름이다.정치에는 항상 참여와 기피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자만이 발언할 자격이 있다」는 참여의논리를 우리는 지지한다.
정당들이 오로지 지역감정에나 의존하고,모호한 노선을 내걸고,부패분자와 구시대의 인물을 공천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능력에 대한 도전이다.그런 정당과 후보들에 대해 국민의 진정한 선택이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저질정치는 바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뿐이다.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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