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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빈티지 안경을 좋아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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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11면

1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복사뼈 길이의 크롭트 팬츠, 갈색 구두, 아가일 체크 양말을 매치해 고감도 패션 감각을 보여준 황성욱씨.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덴마크 ‘디자인의 아버지’ 핀 율의 작품이다

좋은 와인의 제조연도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한 빈티지(Vintage)는 오래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을 뜻한다.중앙SUNDAY가 ‘스타일이 있는 인물’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취재원 황성욱씨(32세)는 빈티지 매니어다. “매니어라는 표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말의 뉘앙스를 고려해 다시 설명하면 그는 ‘빈티지 제품을 즐기는’ 사람이다. 현재 스칸디나비안 가구 수입, 인테리어, 시행 등을 하는 라이프스타일 회사 모벨랩의 이사로 빈티지와 연관이 많아 일도 즐기며 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낡은 청바지와 티셔츠를 모았다. 면허를 갖게 된 후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자동차였다. “하지만 자동차는 빈티지라고 안 하고 앤티크라고 하죠.” 관심은 가구로 옮겨 갔다. 나무줄기에서 작은 가지들이 뻗듯, 가구를 기본으로 한 그의 빈티지 사랑은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탐닉하고 있다. 현재 황성욱씨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상은 빈티지 안경이다.

2 황성욱씨가 좋아하는 1957년대 스툴. 덴마크 T&E Kindt-Larsen의 작품이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놀러 갔던 멕시코에서 본 레이밴 선글라스가 계기다. “다리 안쪽에 제조연도와 제조사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요. 시간을 한참 거슬러 가는 이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졌죠.” 뉴욕으로 돌아와 최고의 빈티지 안경 브랜드를 찾았고 ‘레트로 스펙스(RetroSpecs & Co.)’를 알게 됐다.

1920년대 미국은 심각한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보석 장인들이 안경 업계에 진출했다. 수출 강화를 위해 정부는 금을 사용하는 상품에 세금 혜택을 제공했고, 덕분에 안경 사업은 활성화됐다. 수공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했던 보석 장인들의 안경은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당시의 디자인은 현재 안경의 표본이 되어 여러 브랜드에서 반복·재생산되고 있다. 레트로 스펙스는 18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안경들을 모아 아카이브(문서·기록 등을 보관)를 구축하고 흩어진 조각들을 맞춰 당시의 오리지널을 재현, 판매한다.

평소 여러 브랜드의 안경과 선글라스를 섭렵했던 황성욱씨였지만 레트로 스펙스를 알고부터 빈티지 안경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사람임을 표현하는 첫 번째 코드는 얼굴입니다. 때문에 얼굴에 착용하는 유일한 액세서리인 안경은 스타일을 완성시키는 최고의 아이템이죠.”

예를 들어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은 일찍부터 빈티지 안경으로 자신의 패션 감각은 물론 이미지를 요리해 왔다. 브래드 피트는 1950년대의 대표적인 안경 브랜드 아메리칸 옵티컬의 ‘미드-센추리 모던 필롯’을 즐겨 쓴다. ‘헤비메탈’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안경은 굵은 선과 묵직한 무게감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조니 뎁은 영화 ‘라스베이거스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저격수’라는 별명을 가진 바슈롬사의 모델을 이용했다. 이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포레스터(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의 주인공), 숀 코너리가 착용했던 안경은 레트로 스펙스사의 것이다.

“빈티지 안경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말하죠. 할아버지 냄새 난다고. 빈티지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시공간을 넘나든다는 데 있어요. 물론 20대는 소화하기 힘들어요. 그들의 얼굴에는 주름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없으니까. 반듯한 수트에만 어울리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하죠. 존 레넌의 사진에는 군복 같은 그런지 재킷에 금테 빈티지 안경을 쓴 컷들이 있어요. 이상하던가요?”

기술이 뒤떨어졌던 과거의 제품이니 기능 면에서는 분명 처진다. 하지만 많은 빈티지 안경의 소재인 금은 부드러워서 최첨단 티타늄보다 착용감이 뛰어나고 편하다. 결국 무엇을 우선시하는가의 문제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샤넬이나 크리스찬 디올의 오트 쿠튀르 의상이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진정한 빈티지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황성욱씨가 가구와 안경 외에 부쩍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템은 ‘집’이다. 70~80년대의 유명 건축가 루이스 칸, 장 푸르베가 지었던 주택. “미국에는 골조만 걷어 파는 빈티지 업체도 있고, 집과 가구들이 함께 경매에 나오기도 해요.” 이미 황성욱씨는 뉴욕의 플랫 아이론 빌딩(1902년에 건축)이 2005년에 재건축을 시작하면서 뜯어낸 창틀을 구입해 거울을 만든 바 있다.

“어떤 가격대이든 빈티지는 예전에도 사람들이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해야 그 가치가 발휘됩니다. 아버지의 가죽 점퍼와 시계를 물려받아 사용하듯 역사와 사용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진정한 빈티지죠.”

-on sunday
편안한 상태에서 아내와 함께 일주일 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 DVD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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