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방부의 유치한 독서 통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한민국 국방부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 불온서적의 군내 반입 차단과 수거를 지시한 국방부의 조치를 보면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불온서적’이라는 개념을 끄집어낸 것부터가 시대착오적 발상인 데다, 선정 기준 또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제대로 읽어보고 선정을 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한 예로 장 교수 책은 1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반정부·반미’로 분류됐지만 내용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장 교수는 대기업 중심의 한국식 개발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완전경쟁 논리에만 매달리면 한국식 개발전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반정부·반미’인가.

국방부로선 북한 찬양이나 반정부 냄새 나는 책이 병영 내로 반입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등 실정법에 위반되지 않은 서적은 누구나 읽을 권리가 있다. 혹시 그런 서적으로 장병의 의식이 해이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별도의 정훈교육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런 책은 소지하지도, 읽지도 말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것은 독재시대의 발상이다. 오히려 다양한 지적 접촉을 통해 건강한 의식을 배양한다면 그것을 통해 정신무장이 되는 것이다.

병영문화 개선 운동에 따라 군내에선 영어회화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독서도 권장사항 중의 하나다. 이런 식으로 불온서적 운운하면 장병들은 소설, 동화책이나 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어느 조직이건 ‘통제’보다는 ‘자율’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이번 일도 금지 일변도보다는 양서를 더 많이 제공한 후 장병들 자율에 맡겼어야 온당했다고 본다. 국방부는 이번 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국가보안법상 이적성 있는 서적만 규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