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한국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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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축구가 올림픽 사상 처음 64년 도쿄(東京)올림픽 축구본선에 진출했을 때 국민의 성원과 기대는 대단했다.당시 자유중국 등의 기권으로 비교적 쉽게 예선 관문을 통과하기는 했지만 56년과 60년의 제1,2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를 연거푸 제패해 최소한 아시아에서는 무적(無敵)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실제로 그 기량도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국내외의 평가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본선에서의 성적은 한국 축구가 아직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보여주는데 그쳤다.체코에 7대1, 브라질에 4대0으로 패했을 때만 해도 실력차는 어쩔 수 없구나싶었지만 아랍공화국에 무려 10대0으로 대패했을 때 이 장면을보고 듣던 축구팬들은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축구의 체계적 교육과 보급이 이뤄지기 시작한것은 대개 1904년 4월 당시 관립외국어학교 교사였던 마르텔이란 사람이 축구를 체육과목 가운데 하나로 채택한 것을 효시로꼽는다.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등의 기록 을 살펴보면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에게도 서양의 축구와 비슷한 「축국(蹴鞠)」이란 스포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축국」은 가죽주머니에 겨나 털,또는 공기를 넣어 발로 차며노는 놀이로만 기록돼 있고 그밖의 자세한 경기방식이나 규칙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다만 중국과 일본의 「축국」에 관한 옛 기록들을 참고해보면 기원전 6~7세기께 고대 그리스의 「하페스톤」이라는 경기에서 비롯됐다는 축구 본래의 모습과 크게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축구의 역사에 관한한 우리도 자부심을 가질 만하고,그 역사가 일천하니 세계 정상은 아직 무리라는 자위는 불식해버릴만도 하다.한국 축구는 지난 10여년간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다.최근 10년간 내로라하는 축구강국들조차 이 룩하지 못했던 3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으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세계 정상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아직 많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예선 첫 경기때 보여준 맥 풀리는 플레이도 불안하고,무엇보다 월드컵 유치 경쟁국인 일본의 급격한 성장이 큰 위협으로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자만은 금물이며 정상은 아직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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