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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22. 앵무새 문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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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큰 딸 정아는 친아버지인 길옥윤 선생을 닮아 내성적이고 문학적 소질이 뛰어난 한편 나를 닮아 고집이 세고 집념이 강하다. 둘째 카밀라는 아버지 아르만도 게디니를 닮아 사교적이고 사업 수완이 뛰어났다. 나를 닮아 한때 가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나는 20년 넘도록 엄마 자리를 비워둔 채 가수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세 모녀는 다른 듯 닮은 듯 서로 비슷한 점도 많지만 판이한 점도 너무 많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HCR)에서 일하다가 영국인 남편을 만나 올 5월 둘째 딸을 낳고 육아 휴직 중인 정아는 현재 방콕에 살고 있다. 서구적 외모와 풍부한 가창력으로 한국 연예계에 데뷔해 가수로 활동하다가 어린 시절 꿈이었던 웨딩플래너로 변신한 카밀라는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산다. 우리 세 모녀는 어쩌면 이렇게 사는 곳도 다르고 각자 걸어가는 길도 다를까.

우리 세 모녀에게는 공통점이 있고, 꼭 닮은 것도 있다. 공통점은 세 모녀 모두 문신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아와 카밀라는 아주 오래 전에 문신을 했다. 둘이 하와이 여행을 갔다가 함께 바다거북을 발견하고, 그것을 둘만의 마스코트로 삼기로 해 발등에 똑같이 거북이 문신을 했다.

나도 오래 전부터 문신을 하고 싶었는데 과연 어디에, 어떤 문양으로 해야 할지 쉽사리 결정할 수 없어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두 딸이 먼저 한 문신을 보고 나는 은근히 부러웠다.

“엄마도 너희들과 똑같이 발등에 거북이 문신을 할까?”

그러자 정아와 카밀라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자매인 저희 둘만의 마스코트이니 엄마는 다른 곳에 다른 문양으로 하라고 했다. 나는 두 아이가 저토록 친밀하고 사이 좋은 자매로 자란 것이 내심 흐뭇하면서도 그 순간 은근히 시샘을 냈다.

“엄마는 가수니까 가수에 어울리게 새가 어때요? 엄마 별명도 ‘마마 버드’이잖아요!”

아이들에 관한 한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엄마였던지 늘 딸들을 보면 첫 마디가 “밥 먹었냐?” “뭐 좀 먹을래?”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를 마마 버드, 엄마 새라고 불렀고, 그것은 내 오랜 닉네임이자 얼마 전부터는 e-메일 아이디로도 사용한다.

나는 괜찮은 생각이다 싶어 카밀라를 따라 문신을 하러 갔다. 왼쪽 어깨에 정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큰 앵무새 한 마리를 그렸다. 아름답고 강렬한 색상을 잘 표현하기 위해 두 딸과는 달리 원색으로 문신을 했다. 전생에 한 쌍의 사이 좋은 바다거북이었을지 모르는 두 딸 정아와 카밀라의 영원한 엄마 새, 마마 버드의 표식을 새긴 것이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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