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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이란과 협상할 것인가 대결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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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미사일 발사실험 같은 최근의 무력 시위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외무장관의 절충안 거부는 이란이 추구하는 전략 노선에 있어서 지도부 내에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 지도부는 자국의 핵시설을 공격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위협이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처한 국내적 어려움 때문에 나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올메르트 정부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상황을 악화시킬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이나 지역 내 패권주의와 관련해 이스라엘에는 정파를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외교적 해결이 어렵다면 이란의 핵무기 소유를 적절한 시기에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아랍 국가들도 대놓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에 공감하고 있다.

이란이 좀 더 현실적 접근을 선택한다면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로 구성된 ‘5+1 그룹’이 지난달 제시한 인센티브 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안은 정치 및 경제적 협력뿐만 아니라 핵연구와 개발, 그리고 새로운 경수로 건설과 공급을 포함한 핵문제에 대한 협력도 약속하고 있다. 정말 새로운 점은 이란이 ‘5+1 그룹’이 제안한 절차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5+1 그룹’이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제재를 요청하지 않는 한, 예비협상 단계에서 이란이 농축우라늄의 양을 늘리는 데 필요한 원심분리기를 새로 설치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지역 내 패권을 받아들이지 않던 이란의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알리 아카바 에라야티 전 외무장관은 최근 아마디네자드의 반유대주의를 간접적이지만 뚜렷하고 공공연하게 비판했다. 이란 대변인도 지역 문제 해결에 있어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마디네자드가 권력을 잡은 뒤 이런 이야기를 한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란이 정말 진지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속내를 숨기기 위한 전략일까. 이란 정부가 미국 대선을 통해 시간을 벌고자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이번처럼 미국이 직접 참여한 협상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이란이 진지하다면 이란과 미국, 유럽, 그리고 지역 내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지역 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이 시간을 벌고 있다면 이는 근시안적이며 어리석은 짓이다.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갈등과 군사적 대결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협상이 실패한다면 대결은 곧 표면화하고 더 위험해질 것이다. 미 대선 후보인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나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모두 이란의 지역 내 패권이나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조지 W 부시 정부보다 유화적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강력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두고 군사적 대결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지난 몇 년의 외교 성과를 굳건히 하고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이란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외교적 해결책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동은 격렬한 대결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정리=하현옥 기자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