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부터 조리까지 ‘4시간 클린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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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정초등학교 안전 급식의 비결은

 “1350명분(교사 포함)의 점심 급식을 맛있고 안전하게 마련하기 위해 오전 4시간여가 마치 시계처럼 정밀하게 돌아갑니다.” 서울 송정초등학교(강서구 공항로) 영양교사 조옥현씨는 급식이 마무리되기 전엔 잠시도 긴장을 풀지 못한다고 말했다. 학교급식에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이 적용된 지 8년째다. 학교급식 HACCP는 식품제조업체의 HACCP와는 성격이 다르다.

제조업체 HACCP는 소품종·다량, 학교급식 HACCP는 다품종·소량의 식품을 취급한다. HACCP의 기본 단위도 제조업체는 공정(process), 학교급식은 레시피(recipe·조리법)다. 게다가 학교급식은 아직 식중독 등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성인보다 못한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 1일 HACCP 전문가인 홈에버 위생품질관리실 김종신 박사와 함께 송정초의 급식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봤다.

◇식재료 구입=‘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 속담은 학교급식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식재료가 불량하면 양질의 급식은 물 건너간다. 학교급식에선 식재료 공급업체를 잘 선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화학적·물리적 위해요소에 대한 관리를 사실상 식재료 공급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정초엔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급식운영위원회(13명)가 있다. 운영위원들이 직접 식재료 공급업체를 방문해 위생 실태를 점검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조씨는 “HACCP 인증을 받은 업체인지, 과거에 불량 식재료를 공급해 반품된 사례가 있는지, 가격이 적정한지 등을 꼼꼼히 살핀다”며 “우리 학교에 공급되는 식재료의 70∼80%는 HACCP 인증 업체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검수=조씨는 오전 7시45분에 출근한다. 식재료를 공급하는 업자와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대면(對面) 검수가 ‘불필요한 요식 행위’라는 업자 측 불만도 있지만 얼굴을 대해야 서로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조씨의 생각이다. 김 박사는 “학교급식에선 검수(무게 측정)보다 검품이 더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온도·포장 상태·이물·냄새·원산지·유통기한 등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학교에선 하루에 8개 업체 공급자와 만난다. 업체당 대면 시간은 5분가량(7시45분∼8시25분). 검수 과정에서 조씨는 냉장 온도를 점검하고, 냉동식품에서 얼었다 녹은 흔적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전처리=오전 8시45분, 200㎡ 남짓의 급식장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썰고 소독하는 전처리 작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처리 과정은 잔류농약·이물·식중독균 제거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생으로 먹는 채소·과일에 묻어있을 수 있는 잔류농약·식중독균·부패균 등을 ‘털어내기’ 위해 염소용액에 5분간 넣은 뒤 다시 꺼내 물로 씻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김 박사는 “전처리와 조리가 한 공간에서 이뤄지면 식중독균 전파 가능성이 크다”며 “장소가 협소한 학교는 일본처럼 미리 전처리가 된 식재료를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조리=오전 9시30분부터 2시간여 진행되는 조리엔 순서가 있다. 탄수화물 식품 등 식중독 유발 가능성이 작은 식재료를 쓰는 조리가 먼저다. 육류·생선·조개 등 고위험 식품(세균이 좋아하는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을 이용한 반찬 만들기는 가급적 배식 직전에 한다. 식중독균이 증식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학교급식 조리 과정에선 가열한 식품과 차가운 식품이 함께 들어가는 음식이 늘 신경 쓰인다. 예컨대 삶은 뒤 충분히 식히지 않은 감자와 찬 오이를 재료로 해서 감자·오이 샐러드를 만들면 음식 안이 세균이 자라기 딱 좋은 온도가 되기 때문이다.

 ◇배식=드디어 정오의 식사 시간. 1학년 어린이가 학교 식당으로 몰려왔다. 아이들은 줄을 지어 먼저 손소독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최진 어린이는 “점심 시간이 기다려진다”며 연신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웠다. 조리 종료 후 배식까지는 채 10분도 안 돼 보였다. 배식으로 학교급식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식판·수저 등 식재료에 대한 설거지가 남아 있다. 이때 식판은 세척→헹굼→세제 세척→헹굼→건조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평가=송정초등학교 점심 급식의 열량은 584㎉, 한끼분 급식비는 1950원(재료비·우유값·관리비 포함). 둘 다 운영위가 정한 것이다. 먹어보니 적어도 이 값보다는 훨씬 나은 식사였다. 함께 식사한 송정초 이상옥 교장은 “우리 학교 급식이 맛·안전에서 최고”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김 박사는 “모든 식기구·식재료가 바닥에 놓여있지 않아 흙탕물이 튀겨 음식이 오염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직원 안전의식이 높았으며, 이는 학교급식 HACCP가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라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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