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Earth Save Us] “검은 석유로 번 돈, 클린 에너지에 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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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석유 사업가이자 기업 사냥꾼인 티 분 피켄스(80·사진) BP 캐피털 회장이 환경 전사로 변신했다. ‘메사 페트롤리엄’의 설립자로 평생 석유 사업가로 살아온 그가 환경 오염의 주범인 석유나 가스 대신 친환경적인 풍력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자는 운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피켄스는 이달 초 대체 에너지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한 웹사이트(www.pickensplan.com)를 개설한 데 이어 본격적인 풍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그는 미국 서부 텍사스의 810㎢에 이르는 대평원을 임차해 2700개의 풍력 터빈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예상 건설 비용만도 60억~100억 달러(약 6조~10조원)나 된다.

피켄스는 올해에만 300만 달러어치의 터빈을 주문 제작했다. 그의 계획대로 2011년까지 텍사스에 거대한 풍력발전소가 완공되면 400만㎾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통의 미국 화력발전소 네 개가 생산하는 전력이다.

피켄스는 풍력을 이용함으로써 발전에 쓰이는 천연가스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 전체 전력 생산의 5분의 1이 천연가스를 이용해 생산되고 있다.

풍력 발전이 본격화돼 천연가스 사용량이 줄어들면 이를 자동차나 트럭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석유 수입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3%를 보유한 자원 대국이지만,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20%를 집어삼키는 소비 대국이기도 하다.

미국 텍사스주 팸파에서 기술자들이 풍력발전에 쓰일 날개를 손보고 있다. 45m 길이의 날개는 지상 125m 높이에 매달리게 된다. 날개 한 개로 300㎾의 전력을 만들 수 있다. 한 해 동안 190만L의 석유를 사용해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피켄스플랜 웹사이트 제공]

국내에서 생산한 석유가 부족해 매년 7000억 달러(약 700조원)어치를 사들인다. 피켄스는 풍력 발전을 제대로 일으키면 30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동시에 환경 오염 피해를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피켄스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텍사스에서부터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중서부 대평원을 풍력 발전 기지로 이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웹사이트뿐 아니라 신문과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서도 클린 에너지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에만 홍보 비용으로 5800만 달러를 썼다. 미국 정가에서는 피켄스의 환경운동이 그가 지지해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부 해안 석유 시추 주장과 마찰을 빚고 있으나 적대 관계였던 민주당의 앨 고어 전 부통령과는 뜻을 같이하는 것이라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평가가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부에선 대체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갑작스러운 열정이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한 다른 수단일 뿐이라고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또 풍력발전소가 자연을 훼손하고 텍사스의 관광객을 줄어들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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