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꽃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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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04면

멸종 직전에 처한 고산식물 솜다리/씨앗을 더 멀리 날려 보내려 백발을 휘날리는 할미꽃/병아리꽃이라고도 불리는 노랑제비꽃

쪼그려 앉아 들여다본 우리
-이 땅 고유한 풍경으로서의 꽃『자연기행』

‘꽃의 사회학’이란 것이 있을까. 사진가 강운구(67)씨가 찍고 쓴 『자연기행(自然紀行)』(까치 펴냄)은 그 비슷한 경지를 보여주는 사진 에세이다. ‘이 땅의 고유한 풍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기’에 우리나라 식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한발 더 들어가자 이른바 ‘토종’ 식물이 궁금해져 이 땅 구석구석을 오래도록 여러 번 헤매었다는 작가는 무릎 꿇고 들여다본 꽃들이 점점 더 예뻐 보여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그것에 다가갔다. “그것들이 발산하는 정서적인 울림에 이 땅의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른 봄 북한산에 핀, 병아리처럼 귀여운 제비꽃을 보면서 작가는 ‘크기와 권력’의 문제를 떠올린다.“이 세상에서는 크기로 순위가 결정되는 것이 많다. 땅도 사람도, 그 사람의 머리나 주머니, 그리고 주먹도 커야만 행세를 할 수 있다. 큰 집, 큰 차, 큰 텔레비전…모든 큰 것들은 당연히 큰 공간을 차지하며 큰 공간을 지배한다. 크다는 것은 마침내 큰 공간을 차지하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대체로 거의 모두가 큰 것들을 탐한다. 사람들은 꽃조차 큰 것을 좋아하며 작은 꽃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팬지’라고 부르는 삼색제비꽃이 그렇다.”

이런 대목은 또 어떤가. ‘꽃의 사회병리학’이라 불러도 좋은 분석이다.
“식물 중에도 얼빠진 것들이 더러 있는데, 아마 사람 흉내를 내느라고 그러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개나리꽃·철쭉꽃·벚꽃·미치광이풀꽃 같은 것들은 넋 놓고 있다가 가을날 기온이 봄날 비슷하면 봄이 왔나 하고 부스스 몇 송이 피우다가 기온이 뚝 떨어지면 깜짝 놀라서 사그라뜨리는 것들이 있다. 자연에 있는 것들은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지만, 도시와 그 주변에 있는 것들 중에서는 흔하다. 공해로 더워진 공기 같은 환경 탓이다.”

인류학자 또는 미학자의 눈으로 들여다본 해석 또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원시시대의 사람들도 꽃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꽃을 꺾어다가 동굴이나 움막 안의 어디엔가 꽂았는지 어찌했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동굴 벽화들에는 양식으로 삼는 여러 동물의 그림은 많으나 꽃 그림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패랭이꽃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려고 술패랭이로 변주를 했다가 다시 술이 더 섬세하고 긴 흰 빛깔로 둔갑을 했다. 오묘하다. 그러나 예술작품이든 뭐든 간에 장식이나 기교가 지나치면 역겨울 수도 있다는 것을 패랭이꽃도 아는지라 아주 드물게만 이런 재주를 보여준다.”

강운구씨는 50년을 사진가로 살며 촉촉한 정서와 진한 서사를 아우른 서정적 리얼리즘의 다큐멘터리를 찍어 왔다. 개발독재의 삽날 아래 사라져 버린 우리 삶을 다룬 사진집 『강운구 마을 삼부작-황골 용대리 수분리』는 우리 시대의 파괴에 맞서 싸운 작가의 한국적 포토저널리즘을 웅변한다.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고 했던 그의 사진정신이 이제 꽃에 와서 결정적 장면을 맞는다.

“목장을 했던 민둥산이 자연 스스로의 복원력으로 몸을 추스르는 과정 중의 하나가 아름답게 펼쳐진 철쭉 꽃밭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구호를 따져 보면 사실은 상당히 주제넘은 것이다. 자연은 사람이 보호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자연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강운구씨에게 진정한 여행이란 몰려다니거나 떠도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쪼그리고 앉아 꽃 한 송이에 한나절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 기우는 겨울 들판의 갈대밭에 시선을 박고 신경림 시인의 시 한 수를 읊는 것이다.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눈물인 것을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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