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억지로 술 권하지 맙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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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술잔을 돌리는 것은 다른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리 사회의 독특한 음주행태다.같은 유교권.동아시아권에 속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인들은 잔을 주고 받지 않는다.그들은 잔을 비우는만큼 얼른 채워줄 뿐이다.흔히들 일본인을 보고 집단 주의성향이 강하다고들 하는데 적어도 술마시는데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일본을능가한다.
술잔을 주고 받는 습관이 왜,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정설(定說)은 없다.공동체의식이나 동류의식과 연관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짐작할 뿐이다.어떻든 나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의도야 어떻든 술잔을 돌리거나 주고 받는 습관이 불합리한 것만은 틀림없다.즐겁기 위해,혹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시는 것이 술인데,주량과 관계없이 똑같이 술잔을 주고 받다 보면 술마시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주량에넘치는 음주가 육체적 건강에도 좋을리 없다.간염등의 전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술잔을 안돌리는 것이 좋다는 의사들의 권고도 있었다. 술잔을 주고 받는 것만도 건강에는 안좋은 습관인데 여기에 폭음문화까지 곁들여지니 음주의 폐해는 더욱 더 커질 수밖에없다. 음주문화개선운동에 나선 보건복지부는▷1차에서 끝낼 것▷폭탄주를 삼갈 것▷상대의 주량을 인정할 것▷적절한 안주를 먹을것을 권하고 있다.1차,2차,3차의 음주행태는 폭음문화에서 나온 것이다.폭탄주는 무차별 집단주의와 폭음문화의 합작 품이다.
오랜 습관인 잔 돌리기를 갑자기 안하기도 어려울 것이다.분위기를 위해 한잔정도 폭탄주도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스스로 원해서라면 2차도 갈 수 있다.다만 「상대의 주량을 인정할 것」-최소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지난 8일 어느 대 학 신입생 환영회에선 선배가 강요하는 냉면그릇으로 소주를 마신 학생이 숨지는 사고까지 일어났다.약자골리기와 같은 느낌도 든다.각자의 주량만 인정해도 음주문화는 한결 합리적인 것이 될 것이다.우리의 음주문화-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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