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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세계가 버린 땅 돌보는 한국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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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질마리'는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서 북쪽으로 400여km 떨어져 있는 인구 10여만의 우리네 작은 군(郡)과 같은 곳입니다. 대다수 주민은 농사를 짓고 있고 인근 부라마 푸트라 강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 사는 아주 가난한 시골입니다.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는 3년 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네팔과 인도 북부를 거쳐 흘러오는 부라마 푸트라 강은 우기(雨期)에는 그 폭이 20km가 되는 아주 큰 강인데, 강속에 산재한 20여개의 섬에는 2만여 주민이 아직도 전기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 밖에 상당수의 음성 나환자들이 살고 있는 질마리는 1억4000만 인구의 방글라데시 내에서도 가난의 대명사, 상습적인 자연재해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곳에 한국.방글라데시 개발협회(KDAB)가 학교와 시범 농장.병원 등을 개설, 운영한 지 14년이 되었습니다. 1992년부터는 매주 두번 2시간여 배를 타고 섬을 찾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던 2만여 주민에게 백신을 놓아주고 피임법을 가르쳐주고 각종 질병을 치료해 주고 있습니다. 음성 나환자와 그 가족의 재활 정착을 위해 3개월 입소교육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의 새마을운동 개념의 농군학교는 그간 40기 19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지역 농촌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왔습니다. 5개 학년 200명의 초등학생들은 평균 10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와 매일 조회에서 '나의 빛나는 방글라'로 시작하는 국가를 힘차게 부르며 일과를 보내는데, 공부를 잘해 졸업생들은 인근 상급학교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한답니다.

KDAB 설립자인 장순호(張淳浩)이사는 1990년 초 처음 질마리에 자리잡을 때 주민들의 차가운 반응과 때로는 적대적인 태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 같은 일들을 외국인이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하는지 가난에 찌든 주민들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점차 농군학교 수료생들이 늘어나고, 병을 치료해주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을 목도하면서 하나 둘 주민들은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길에서 마주칠 때 반갑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이역만리 깜깜 벽지(僻地), 어렵기만 한 환경에서 자원해 지역주민의 나은 삶을 위하여 가르치고, 어렵고 불쌍한 사람을 치료하고 보살펴주는 사역(使役)인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세속적 칭찬은 그들의 넓고 깊은 봉사하는 마음을 도리어 가볍게 만드는 실례를 범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20년 이상의 이민 생활을 접고, 또는 암 전문의사로 은퇴한 뒤 풍요로운 미국 생활을 뒤로 한 채 오직 가여운 이들을 치료하고 도와주는데 전념인 신박사나 류선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사역'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듯 KDAB의 활동에는 분명히 종교적 배경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며칠 지내는 동안 의도적이거나 습관적인 선교활동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는데, 장이사의 설명대로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도인 방글라데시에서 지금과 같은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NGO 활동이 가능할 수 없었겠지요. 8년째 질마리 사업장 관리에 정성을 쏟고 있는 장소장은 보기에는 가녀린 한국 여성이지만 그의 굳센 의지와 실행력은 70여명 현지 직원들을 자조(自助) 의식과 할 수 있다는 신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나누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는 이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단순히 도와주고 마는 차원이 아니라 그 도움이 바탕이 되어 가난을 물리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반을 심어주는 이 분들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소리없이, 누가 보든 안 보든 묵묵히 어렵고 안 된 이웃에게 참사랑을 베푸는 우리 사람들의 뜻깊은 '질마리 삶'을 보면서 벌써 무더운 방글라데시에서 고국의 싱그러운 봄향기를 맡습니다.

이규형 주 방글라데시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