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연극 ‘청춘 18대1’ 숨가쁜 무대 … 극적인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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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같다.

연극 ‘청춘 18대1’은 탁탁거리는, 무미건조한 타자 소리로 문을 연다. 적막감-. 컴컴한 무대 한쪽을 차지한 건 경찰서 취조실이다. 일본 경찰은 매섭게 여자를 몰아세운다. 여자는 완강히 부인한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는다. 그의 설명은 그대로 무대 중앙에서 재현된다. 취조를 받던 여자도 그 무대에 뛰어든다. 그러다 다시 취조실로 돌아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울부짖는다. 중앙과 구석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도 넘나든다.

영화로 따지면 언뜻 ‘몽타주 기법’을 연상시킨다. ‘죽도록 달린다’ ‘왕세자 실종사건’ 등에서 독특한 무대 언어를 창출해낸 서재형 연출은 이번에도 영화적 상상력을 무대에 펼쳐놓는다. 단절된 필름을 면밀하게 편집해내듯, 단일한 무대를 분절한 뒤 각각의 공간을 후루룩 넘나들며 그 사이에 사건을 역으로 추적해간다. 막판 반전 역시 극적이다. 주도면밀하며 재기 넘친다.

무대 미학만이 새로운 건 아니다. 발상 역시 신선하다. 작품은 1945년 일제 말기, 일본 한인 유학생들이 도쿄 경찰청장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소재다. 일종의 독립운동이다. 그런데 출발점이 유별나다. 주인공 김건우는 깊은 뜻을 품었지만 나머지 가담자는 사실 거대한 포부하곤 인연이 멀다.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동생을 보호해주기 위해 혹은 애인을 추억하면서 등 개인적 사정 때문에 자살 폭탄 거사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도저히 이기기 어려운 이른바 ‘18대1 싸움’을 각자 벌이고 있는 셈이다. 독립운동을 민족 문제나 이념 대립이 아닌, 청춘의 무모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치환시킨 셈이다. 여기에 간간이 등장하는 스포츠 댄스는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 극의 다이내믹함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무대 활용도, 사건을 엮어냄도, 이완과 긴장을 오가는 능숙함도 모두 좋지만 극은 후반으로 갈수록 나르시시즘에 빠져 허우적댄다. 전체 분량의 3분의 1가량은 걷어내도 될 만큼 사건 전개는 실종된 채 끝없는 자기 연민에만 몰입한다.

죽었던 김건우가 반복해 자전거를 타고 무대로 등장해 독백을 하는 건 관객에 대한 강요에 가깝다. 지나친 낭만성은 미성숙의 다른 이름 아닐까. 감정 과잉과 어설픈 서정성으로 자칫 미스터리의 골격마저 흔드는 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8월 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02-708-5001.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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