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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GNP신봉자와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드디어 우리나라의 1인당 GNP가 1만달러를 넘어선 것 같다.한국은행의 잠정추계를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95년의1인당 GNP는 대략 1만39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비록간신히 턱걸이로 도달한 1만달러지만,그래도 그 게 어딘가.무(無)에서 이룩한 기적 아닌가.
국민총생산과 실질소득은 다른데도 한나라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간단하고 유효한 지표로 1인당 GNP가 거론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그러나 최근에는 잘 사는 정도를 재는 척도로서의 1인당 GNP의 성가(聲價)는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삶의 질이나 보람을 따질때 GNP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선 「GNP신앙」이 뿌리 깊다.불길한 경제지표도 GNP에 의탁(依託)하면 그 불안이 해소된다.
□ □ □ 『무역적자가 자꾸 늘어나 큰일났습니다.수출보다 수입이 격증하니까 지난 1,2월 두달 동안의 무역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35억달러를 넘어섰답니다.』 『그게 왜 걱정입니까.95년 무역적자 1백억달러도 전체 GNP의 2.3%밖에 안되잖습니까.』 『그래도 흑자를 못볼 바에는 적자라도 줄여야죠.』 『쓸데없는 소리!그 정도면 91년의 3.8%보다 훨씬 줄어든 것이고,미국등 주요 선진국의 비중보다 훨씬 낮은 것입니다.』 『외채(外債)가 다시 늘어나 큰일 났습니다.4백억달러도 많다고 하다가 지금은 7백억달러를 넘어섰답니다.』 『그게 왜 걱정입니까.총외채의 대(對)GNP비중은 16%밖에 안됩니다.』 『빚 부담도 GNP와 비교해야 합니까.빚은 없을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순진한 소리! 경제의 덩치가 커졌으니 외채 공포증에서 벗어나십시오.이대로 밀고 나갑시다.2001년에 2만달러,2005년에 3만달러,2010년이면 영국을 제치고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 됩니다.』 『그렇게 늘어나는 소득을 삶의 질을 높이는데좀 씁시다.1인당 GNP가 우리보다 훨씬 적은 태국도 총예산의10%이상이 복지예산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6% 수준이잖소.』 『아직 나눌 때가 아닙니다.파이를 좀더 크게 합시다.』 (그럴때는 왜 GNP비중을 따지지 않을까.) □ □ □ GNP가 성격상 여러가지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재미 있다.가령 이혼이 늘면 GNP도 커진다.이혼한 여자는 직업을 갖게 되고,그녀의 새로운 경제활동이 GNP통계에 잡히기 때문이다.GNP 지상(至上)주의는 여기서도 허점을 드러낸다.
적자와 부채증가를 걱정말라는 호언(豪言)도 간(肝) 큰 소리아닐까.80년 미국의 대외 순자산은 3천9백25억달러였다.
최고 부국인 미국의 신세를 안진 나라는 지구상에서 찾기 어려웠다.미국은 이 부를 쌓는데 60년이 걸렸다고 경제전문가들은 말한다(더 월드 인 1966,277쪽).그러나 이것을 쓰는데는6년밖에 안걸렸고,지금 미국의 대외 순채무는 8 천억달러를 넘고 있다.
도대체 우리의 1만달러라는 것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노벨상 수상자를 수십명씩 배출해가면서 달성한 그 1만달러와 같은 것인지,그것이 또 궁금해진다.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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