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한국인 전사자 2만여 명 10년 걸쳐 명부 정리한 일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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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도쿄 다치카와(立川)시에 사는 전직 학원강사 기쿠치 히데아키(菊池英昭·66·사진) . 그는 일제에 의해 군인·군속으로 전쟁에 강제 동원됐다가 전사한 조선인 2만여 명의 명부를 10여 년에 걸쳐 완성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전사자를 출신지역과 부대·사망장소·일자 별로 꼼꼼하게 분류해 언제 어디에서 숨졌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정리했다. 그는 이 명부에 해설을 곁들여 내년 광복절까지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1991년 한국의 전쟁유족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배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시작했다. 당시 원고는 구 일본군 군인과 군속·학도병·위안부 출신 등 40명이었다. 우연히 ‘일본 전후책임을 확실히 하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 회원이던 친구로부터 원고들의 소장을 확인하는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고들의 어렴풋한 기억을 바탕으로 소장을 작성하다 보니 시간과 장소, 소속부대 등 부정확한 것이 많아 정확한 소속부대와 지역을 확인하는 일이 내 역할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일본군 조직과 소속부대 배치 등을 공부했다. 1971년 일본 정부가 한국에 전달한 ‘구 일본군 재적 조선인 사망자 연명부’를 참고자료로 썼다. 2만 명이 넘는 20대 젊은이들이 몇 달 사이에 목숨을 잃었고, 유족들에게는 어디서 어떻게 숨졌는지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당시 재판은 원고 패소로 끝났는데.

“정치적 의미는 크다. 10년을 끈 재판 과정에서 전후 배상이라는 단어가 정착됐고 위안부의 존재가 재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혼자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98년 우연히 자료를 정리하다 도쿄 고토(江東)구 후카가와(深川)숙소에서 시바우라(芝浦) 시설부대 소속 조선인 114명이 1945년 3월10일에 숨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태평양 섬에 공항과 연료공장을 만드는 데 차출된 작업원들이 도쿄 대공습 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조선인 사망자들의 명단을 지역별, 소속 부대별로 정리를 하다 보면 전쟁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족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구 일본군 재적 조선인사망자 연명부’의 복사본을 모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기록은.

“마이즈루(舞鶴)만에서 발생한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사건이다. 종전 뒤 조국에 돌아간다고 기뻐하는 조선인들을 태운 배가 아오모리(<9752>森)를 출발해 45년8월24일 마이즈루에 들렀다가 기뢰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인 400명이 숨졌다. 팔라우 섬에서는 공항 건설에 투입됐던 전남 출신 조선인 인부 264명이 44년 8월8일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이 자료가 어떻게 활용됐으면 하나.

“숨진 한국인들의 넋을 기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어느 부대에서 어떤 동료와 함께 어떤 일을 하다 어떻게 죽었는지 유족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 ”

-최근 일본정부가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한 일로 한일관계가 또다시 냉각됐다.

“전쟁하는 것은 국가지만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평범한 국민이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의 잘못으로 2만4000여 명의 조선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인도 300만 명이 숨졌다. 이번 독도문제도 한 국가가 잘못하면 평범한 양국 국민이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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