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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동산도 꺼지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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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기도 일산 신도시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49·사진) 소장을 포함해 연구인력이 3명뿐인 초미니 연구소다. 하지만 이 연구소는 경제계에선 꽤 알려져 있다. 2000년 출범 이후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객관적인 경제 전망을 제시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구소는 일찌감치 2002년부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것이란 보고서를 내 왔다. 그의 예견대로 지난해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불거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김 소장은 이제는 국내 부동산 시장이 머지않아 붕괴될 차례라고 진단한다. 중앙SUNDAY가 지난 16일 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국내외 경제 전망을 들어봤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전망할 당시 근거는.

“미국의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로 최근 부실이 드러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2001년부터 대출을 크게 늘렸다. 특히 2003년과 2004년에는 두 회사 대출 대부분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집중됐다. 신용도가 높은 프라임론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주택 가격이 계속 뛰는 상황이어서 신용도가 낮은 주택 소유자에게 돈을 빌려줘도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 경영자들이 성과를 늘려 연봉을 더 많이 받으려는 속셈도 있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모기지 회사에서 사들인 채권을 기초로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 금융회사들에게 파는 업무를 한다. 집값이 계속 뛰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값이 떨어지면 MBS가 부실해지고 여러 단계에 걸쳐 관련된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점을 우려해 2004년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도 의회에 MBS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법을 만들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봤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2002년과 2003년에 유료 회원들에게 제공되는 보고서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를 다뤘고, 2004년에는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자를 통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미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일본, 미 부동산 문제 해결 나설 것

-미국 정부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는데.

“두 회사의 부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 공황이 올 수 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발행한 채권 중 1조5000억 달러를 외국 중앙은행들이 갖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이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상당히 갖고 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은행의 투자 사실도 드러났다. 한은은 투자 금액을 밝히지 않은 채 투자 사실은 시인했다. 현재 350억~400억 달러가량 투자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김 소장은 막대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정부가 자체 역량만으로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일본의 막대한 외환 보유고가 두 기관을 구제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정부의 조치가 어느 정도 효과적일 것으로 보는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미 정부가 무제한 유동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재정 적자 규모를 감안할 때 필요한 자금을 자체 조달하긴 힘들다. 그래서 해외에서 조달할 것으로 본다. 한때 미 정부는 세계 각국 국부펀드의 힘을 빌리려 했다. 그러자 미국에서 중동의 국부펀드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러시아와 중국 돈은 찜찜해한다. 결국 손을 벌릴 수 있는 곳은 일본뿐이다. 그래서 일본이 최근 공식적으로 협력 의사를 표명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 건가.

“중간 지점에 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 채권 규모를 1조5000억~2조 달러 정도로 본다. 이 중 8500억 달러 정도 처리됐다. 문제는 손실 규모가 확정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부실 채권 규모가 더 불어난다.”

한국 부동산, 美보다 거품 심해

김 소장은 국내 부동산 시장이 이미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근거로 내세우는 게 극심한 거래 부진이다. 그리고 그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 형성된 거품이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 부동산 거품 문제를 자주 지적하는데 왜 우리가 미국보다 훨씬 많은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보는가.

“2001년 일산 신도시의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은 1억5000만원 정도 됐다. 그런데 이게 한창 때는 5억~6억원까지 올랐다. 이 기간에 임금은 얼마 오르지 못했다. 미국은 지역 편차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평균 15만 달러에서 23만 달러로 올랐다. 여기에 비춰볼 때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찌감치 부동산 대출을 규제해 금융기관 부실을 막았다고 자부하는데.

“사기성 발언이다. 우리 부동산 통계 자체가 엉터리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수도권 일대 아파트 가격은 3배 정도 올랐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가격 지표로 삼는 국민은행의 주택가격지수는 이 기간 70%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최근엔 아파트 가격이 상당히 떨어지고 매매도 거의 없는데 주택가격지수는 거의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이런 엉터리 통계를 가지고 부동산 정책을 펼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김 소장은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로 정부가 얼마든지 정확한 통계를 산출할 수 있는데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내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거품이 가장 심한 곳이 수도권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을 뺀 수도권은 상당히 공급 과잉 상태다. 일산 근처 신도시의 기존 분양 아파트도 텅 비어 있다. 미분양도 속출한다. 호가는 1억~1억5000만원가량 하락했지만 거래는 없다. 더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일본도 거품 붕괴 초기 단계에선 거래가 얼어붙다가 일정 기간 지나자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들어 거래가 확 줄면서 지난해 말부터 호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버블 붕괴의 초기 단계다.”

정부 경제 관리 능력 미비

최근 들어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우리 경제를 비교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또 대통령까지 나서서 위기라고 시인했다. 뭐가 문제인지 들어봤다. 그는 정권의 위기라고 단언했다.

-외환위기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위기는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점쟁이처럼 언제 위기가 어떤 식으로 온다고 꼭 찍어서 말할 수 없다. 다만 현 정부가 국가 경제를 관리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게 큰 위기라고는 말할 수는 있다.”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자금을 투입했다. 환율은 안정될 것으로 보는지.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원화의 방향성을 말하기 어렵다. 원래 외환시장은 유구무언(有口無言)과 허허실실(虛虛實實)로 대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자신의 카드를 모두 보여줬다.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원화가 달러당 900원대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

▶Who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일본이 자랑하는 노무라종합연구소에 입사했다. 연구소 재직 당시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자 97년 12월 100페이지 분량의 ‘경제보고서’를 정부 기관과 한국은행 등에 보내면서 이름을 알렸다. 보고서 골자는 국내 종합금융사들의 무분별한 해외 차입이 외환위기를 야기했다는 것이었다. 2000년 5월 독립해 자신의 이름을 딴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설립하고 회원을 상대로 유료 보고서를 펴내고 있다. 매달 두 차례 나오는 『경제보고』를 받아 보려면 연회비 300만원을 내야 한다. 이와 별도로 매주 2건 e-메일로 전송되는 『경제시평』 서비스의 연회비는 20만원으로, 현재 회원 수는 670명이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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