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새 두 배로 커진 호수‘물+얼음 쓰나미’ 공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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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20면

①네팔 랑탕 히말라야의 해발 4380m 고산지대에 있는 고사인쿤드 호수. 인근 빙하가 녹아내려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다.(고사인쿤드=권석천 기자) ②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골번에 있는 페자 댐 지역. 지독한 가뭄으로 저수량이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AP) ③ 영국 런던 교외 레드브리지의 ‘CO₂저배출지역(Low Emission Zone)’ 표지판. 오염물질을 많이 내뿜는 디젤 트럭이 이 지역을 통과할 경우 최고 40만원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블룸버그 뉴스)

“하늘에서 쓰나미가 밀려올 수 있다.”
네팔 카트만두의 국제통합산지개발센터(ICIMOD)가 발표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공중 쓰나미’ 시나리오 중 일부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빙하 호수들의 둑이 무너지면서 상상을 뛰어넘는 물과 얼음이 쏟아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네팔에만 2300여 개의 빙하 호수가 있으며 이 중 30여 개는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보고됐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수만 명의 인명 피해 등 대형 참사로 이어질 것이다.
과연 현지의 실태는 어떨까.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취재 지역은 카트만두 북쪽 랑탕 국립공원에 있는 고사인쿤드 호수. 해발 4380m에 있는 이 호수는 수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빙하 녹아 내리는 히말라야

카트만두에서 고사인쿤드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둔체(해발 2030m)까지 가는 데 차로 꼬박 8시간이 걸렸다. 다음날 아침 둔체를 출발해 신곰파(3350m)에서 1박을 한 뒤 라우레비나역(3930m)으로 향했다. 우기(雨期)의 궂은 날씨였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을 1시간쯤 가자 촐랑파티(3584m)가 나타났다. 나무로 지은 로지(산장) 서너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2년 전 집을 새로 지었다”는 산장주인 쉐랍 상보(40)는 “벌목 허가증을 산 뒤 인근 숲에서 나무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이끼 낀 나무 밑동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가이드 얌 타파(24)는 “주민들이 나무를 무단으로 베어 집을 짓거나 땔감으로 쓰곤 한다”며 “단속을 피하려고 아예 숲에 불을 지른 뒤 땔감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현재 네팔은 연료의 75%를 나무에 의존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대규모 개간이 이뤄지면서 매년 1.7%씩 숲이 사라지는 상황이다.

라우레비나역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온통 안개 담요에 덮여 있었다. “고산병에 좋다”며 마늘 수프를 권하는 ‘마야호텔’의 민둘 타망(51)에게 이 지역의 기후 변화를 물었다. “24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눈이 2~3m씩 내렸어요. 스키를 탈 정도였지요. 10여 년 전부터는 눈이 조금밖에 안 내립니다.” 그는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창밖을 가리켰다. 멀리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가네시의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엔 우기 때도 산 중턱까지 눈에 덮여 있었지만 요즘은 산 정상 부분만 눈이 붙어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고갯길을 1시간 정도 올라간 뒤 천길 낭떠러지를 따라 산허리를 돌았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개에 가려 물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고사인쿤드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쯤. ‘시바신(神)의 별장’으로 불리는 이 호수는 힌두교도의 주요 순례지 가운데 하나다. 반경 300~400m의 타원형으로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린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로지를 운영해온 니마 라마(41)의 안내를 받아 호수로 내려갔다. 라마는 호숫가 중간쯤에 있는 사원 앞에서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호수가 여기까지였다. 계속 물이 불면서 두 배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3년 전에는 로지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그는 “인근 산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행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둔체에서 하루를 묵은 뒤 카트만두로 향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오른편 산기슭의 두 마을 사이를 산사태가 아슬아슬하게 파 내려간 모습이 보였다. 주민 아르준 파우달(35)은 “2년 전 비가 내릴 때 산사태가 났다. 마을의 60여 가구가 큰 변을 당할 뻔했다”고 전했다. 산사태의 흔적은 계속 목격됐다. 도로가 흙과 돌 더미에 파묻혀 길을 새로 낸 곳도 적지 않았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기상청을 찾았다. 홍수예측팀장인 딜립 쿠마르 가우탐 박사는 “우기는 6월 10일~9월 21일로 여기에서 한 주 정도 늦거나 이른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불규칙해지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중국과 인도를 지목했다.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공업화되는 두 나라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습니다. 빙하가 녹는 데다 최근 기름값 상승으로 산림 남벌도 심해졌습니다. 홍수와 산사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ICIMOD의 바산타 쉬레스타 환경정보실장을 만났다. 그는 “빙하의 해빙은 지구온난화 때문으로 보인다”면서도 “과학적인 조사가 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석유 같은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가 온난화와 빙하의 해빙을 불러 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인간 활동만이 원인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어요. 빙하 호수의 얼음이 돌면서 해빙이 더 빨라질 수도 있지요. 선진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심이 시급합니다.”
현지인도 산림 남벌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경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네팔의 각계 인사 150여 명으로 구성된 ‘푸른네팔국제친선협회’의 히라 카르키 회장은 “숲이 사라지면 히말라야도 숨을 쉴 수 없게 된다”면서 “매주 나무를 심고, 주민들을 상대로 환경 교육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갠지스강 등의 원류로, ‘아시아의 젖줄’ 역할을 해온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수천만, 수억 인구의 삶도 불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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