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런던 도심 가려면혼잡통행료가 5만6000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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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20면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의 비숍게이트 62번지 해슬우드하우스 1층. 평범해 보이는 석조건물이지만 세계 산업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곳이다. 세계 최대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권 시장인 유럽기후거래소(ECX)가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ECX는 유럽 CO₂배출권 거래시장의 90%를 차지한다.

CO₂와 전쟁 중인 영국

유럽에서는 CO₂배출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CO₂배출이 지나치게 많은 기업은 정상적인 경영을 위해 이곳에서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대로 CO₂배출이 적은 기업은 여유분의 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남긴다. 2005년부터 전기·석유·철강·시멘트·제지 등 5개 산업이 CO₂규제 대상에 들어갔고, 2011년부터 항공과 조선산업이, 2012년부터 해양·운송산업이 각각 포함된다. 이를 어길 경우 t당 100유로의 벌금을 물게 돼 있다.

ECX의 패트릭 벌리 사장은 “최근 ECX를 가장 많이 찾아오는 사람은 일본인들”이라며 “최근 석 달간 민간기업은 물론 정부와 연구소 등에서 일주일에 두 차례 ECX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11월 대선 이후에는 교토 의정서에 비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민에게도 CO₂배출은 현실의 문제다. 2003년부터 런던 중심가로 진입하는 차량은 하루 8파운드(약 1만6000원)의 혼잡통행료를 내야 한다. 차량이 내뿜는 온실가스를 강제로라도 줄여 보겠다는 의도다. 시행 직후 교통체증은 22%, 이산화탄소 배출은 16% 줄어드는 성과를 올렸다.

런던 시내에서 만난 헤드헌팅사 비전와이즈의 샘 손 사장은 “시내로 차를 가져오면 시간당 최고 6파운드의 주차료 외에 혼잡통행료까지 물어야 한다”며 “승용차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다시 도심 진입 차량이 늘자 런던시는 10월부터 CO₂배출량에 비례해 혼잡통행료를 최고 28파운드(약 5만6000원)로 올릴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2월부터 오염물질 발생 차량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저배출지역(Low Emission Zone)’을 만들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디젤 화물차량에 일종의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규정된 배출량을 초과할 경우 최대 40만원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기업들도 CO₂를 마케팅 전략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 표시제’가 대표적인 경우다. 탄소발자국 표시제란 제품의 생산·제조·배송·폐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합산해 최종 제품에 표시하는 제도다. 영국 최대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2월부터 자사 상품에 탄소발자국을 표시했다. 식품회사 워커스도 감자칩에 탄소발자국을 부착해 판매한다. 식품을 구입할 때 칼로리 양을 보는 것처럼 CO₂배출량을 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 탄소발자국을 보고 CO₂배출량이 적은 제품을 사용하라는 일종의 환경 마케팅이다. 영국은 CO₂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존 화석연료 대신 원자력이나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지난 5월 “단지 노후시설 교체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야심 찬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또 오는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KOTRA 런던무역관의 이종환 부관장은 “영국은 지구온난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온 나라”라며 “이를 통해 다음 세대의 세계 경제를 주도하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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