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역을 잊다 -‘도쿄타워’(미나모토 다카시, 2004)의 ‘라 타슈 1992’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호 07면

일본 특유의 ‘롤리타 콤플렉스’와 아줌마를 위한 판타지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이 해괴한 콘텐트가 그들 특유의 현란하되 과격한 스토리텔링 기법과 맞물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이 에구니 가오리의 연애소설 『도쿄타워』다. 그리고 이 소설을 명품으로 도배한 영상에 담고 남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 낸 것이 바로 미나모토 다카시 감독의 영화 ‘도쿄타워’이다.

심산의 영화 속 와인

시후미(구로키 히토미)는 잘나가는 CF 감독을 남편으로 둔 덕에 도쿄 아오야마에서 명품숍을 운영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41세의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3년 전 당시 18세였던 친구의 아들 도루(오카타 준이치)를 처음 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이쯤에서부터 벌써 심기가 불편해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엄마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단 말이야? 그렇다. ‘도쿄타워’는 20살 연상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 21살 청년의 이야기이다.

불륜이라면 지레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를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한 시퀀스도 제대로 보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에구니 가오리의 소설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는 적절치 않다. 남성적인 재해석과 다소 억지스러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멋진 음악과 패션 그리고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도쿄의 풍경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만약 와인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번이고 신음 섞인 찬탄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 영화를 쓰레기라고 단정 짓고 나면 음악도 들리지 않고 영상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도덕과 윤리 따위를 저 편에 밀쳐둔 채 눈을 감고 마음을 열면 의외로 근사한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도회적인 노래는 노라 존스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Nights)’이다. 아름다운 것과 만나면 그것이 사라질까 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도루가 시후미의 손을 꼭 잡고 듣던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바장조 작품 18의 2악장이다. 시후미가 더는 절제하지 못하고 도루를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할 때 스크린을 압도했던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의 4악장이다.

화면에 비치는 거리의 풍경과 배우들의 의상 역시 환상적이다. 도무지 지상에 존재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 몽환적인 야경은 모두 도쿄의 롯폰기와 아오야마에서 촬영됐다. 시후미를 감싸고 있는 옷과 소품들은 모두 구찌·프라다·루이뷔통 등 당대 최고의 명품들이다.

여기에 덧붙여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와인들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화면을 압도한다. 와인 애호가들의 입에서 시샘 섞인 한숨을 내뱉게 만든 것은 시후미가 단골 레스토랑의 지하 셀러로 도루를 불러내는 장면이다. 명품 와인들로 가득 채워진 그 셀러 안에는 VIP 고객들만을 위한 비밀 테이블이 단 하나 놓여 있다. 그곳에서 시후미는 도루를 위하여 ‘라 타슈(La Tache) 1992’를 딴다.

부르곤의 포도밭은 작다. 흔히 말하는 샤토(Chateau)란 드넓은 포도밭을 가진 보르도에서나 통용되는 개념이다. 부르곤에는 샤토가 없다. 포도밭이 작아도 너무 작은 것이다. 심지어 그 작은 포도밭조차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가령 몽라셰(Montrachet)라는 그랑 크뤼 포도밭의 소유주는 무려 17명이나 된다.

보르도에 샤토가 있다면 부르곤에는 도멘(Domaine)이 있다. 본래 네고시앙에서 비롯된 개념인데 지금은 여기저기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와인제조업체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부르곤을 대표하는, 아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니 전 세계를 대표하는 도멘은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로 유명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다. 와인 애호가들은 흔히 ‘디알씨(DRC)’라고 줄여서 부른다.

라 타슈는 디알씨가 소유하고 있는 그랑 크뤼 포도밭이다. 디알씨는 이 밭을 다른 도멘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유일한 소유주인 것이다. 이렇게 부르곤에서 단독으로 그 밭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병 레이블에 자랑스럽게 ‘모노폴(Monopole)’이라고 쓴다.

라 타슈는 디알씨의 모노폴이다. 1년에 고작해야 1800상자를 만든다. ‘도쿄타워’는 지하 VIP 셀러에서 시후미가 도루에게 와인을 따라줄 때 그 레이블을 빅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디알씨, 라 타슈, 모노폴, 1992.

왜 하필 라 타슈였을까? 라 타슈는 본래 얼룩이나 반점 따위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여기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덧입힌다. 그 얼룩이나 반점을 ‘불륜’의 은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라 타슈를 마시고 정사(情死)하는 사람이 꽤 많다. 사회적 지위에 혹은 내밀한 영혼에 묻어버린 지울 수 없는 얼룩, 그것이 불륜의 정체일까? 그래서 불륜으로 인하여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은 지상 최후의 음료로 라 타슈를 마시고 함께 죽어가는 것일까? 라 타슈가 도대체 얼마냐고는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정신 건강에 해롭다. 이쯤에서 시인 천상병의 익살맞은 넋두리가 떠오른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못 가네’.

시후미와 도루는 정사(情死)를 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쿄타워’의 반전이다. 격정을 못 이겨 또다시 도루와 정사(情事)를 나눈 시후미는 회한에 젖어 여고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 “예전에 친구한테 책을 빌려서 전철을 탄 적이 있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려야 될 역을 놓쳐버렸어. 처음 내린 낯선 역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다시는 그런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도쿄타워’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 이를 악물고 그 공포의 순간을 통과하여 ‘다음 역’까지 가 버리는 것이다. 로맨틱하긴 하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다. 그런 일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벌어졌으면 좋겠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나는 음미한다. 시후미가 내려야 될 역을 지나쳐가는 순간, ‘라 타슈 1992’의 잊을 수 없는 향기가 영혼을 마비시키는 느낌이다.



심산씨는 ‘심산의 와인예찬’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 등을 썼으며 현재 심산스쿨(www.simsanschool.com)에서 시나리오와 와인을 가르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