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원조 보수-개혁 보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선거판이 보혁(保革)이념논쟁에 휩싸일 전망이다.보수(保守)본류를 자처하는 자민련이 지난주 4.11총선 출정식을 하면서 보수라는 큰 칼을 휘두르자 이에 질세라 신한국당이 자기네가 원조(元祖)보수라고 맞받아쳤다.
자민련은 신한국당내의 불순한 세력의 존재를 꼬집어 『극좌(極左)와 극우(極右)가 함께 동거하는 회색정당』이라고 비판하고 『역사바로세우기니,제2의 건국이니 하는 것은 역사의 단절이며 국가 정통성의 부정』이라고 신랄하게 공격하고 나섰 다.이에 대해 신한국당은 『자민련은 썩어빠진 구세력의 잔당(殘黨)』이라고비난하고 『역사바로세우기는 자민련 같은 정치세력이 폄하하고 훼절한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이라고 반격했다.국민회의와 민주당측은 이들의 다툼을 자격없는 부패 수구 (守舊)세력들간의 논쟁으로 격하시켜 바야흐로 보수논쟁이 선거의 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정치적 성향은 대체로 보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보면 국민들은 스스로를 보수적으로 규정받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그것은 보수라는 말이 풍기는 수세적이고 비진취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다.오히려 국민 들의 절반 가까이는 그들이 진보적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개혁적이라고 불리길 원한다.진보나 개혁이라는 말이 주는 적극성과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투표결과를 분석해보면 대체로 보수성향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한다.지난 14대 대통령선거 때도,14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막판에 표의 향방을 좌우한 것은 보수표의 집중현상으로 풀이됐다.각당이 노리는 것은 바 로 이런 성향일 따름이다.
실제로 자민련이 주장하는 보수는 프랑스혁명의 반동으로 나타난테르미도르 반혁명을 연상시킨다.그들은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보수성의 한 특성을 들어 3공과 5공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옹호한다.그러나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것이 곧 과거의 정 당성과 직결된다는 것은 논리적 무리다.보수의 시조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대한 두려움에서 보수론을 주장했던 역사적 사실에 비춘다면자민련은 보수의 원조라 할 만하다.그러나 그들의 복고적(復古的)보수는 시대착오적이다.
신한국당의 보수는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지키려는지 알 수 없는 혼성(混成)보수다.그들이 80년대 극렬한 해방구 투쟁자를공천할 때 그들이 보수하고자 한 것은 급진좌파적 변혁인가.그들이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 주모자등을 공천했을 때 는 군사정권의강권통치를 보수하려고 한 것인가.그들이 부패의 대명사로 불리는인사들을 공천할 때 그들이 보수하고자 하는 것중에 반개혁적 부패도 포함되는 것인가.모든 것을 망라하려다 일관성을 잃은 백화점식 보수다.
결국 이들의 보수론은 보수적 투표성향을 노린 전술적(戰術的)보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그들이 주장하는 어디에도 법치(法治)라든가,규제의 완화라든가,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라든가 하는 가장 자유주의적 인 신보수의원칙들은 없다.있다 해도 다만 수사적(修辭的)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그것은 이들이 자유주의적 이념성을 근거로 한 진정한 보수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들은 다만 권력과 당선이라는 목표만좇아 모인 붕당적(朋黨的)보수세력일 따름인 것이다.
이들 정당에 대한 국민지지율이 고작 10%대에 머물고 있다는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그들이 개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진정한 보수세력이 되려면 시민적 기반에 근거한,가장 자유주의적인,그럼으로 인해 가장 진보적인 보수이지 않으면 안된다 .개혁성은 거기서 보장되는 것이며,그 역사성은 그로 인해 담보될 수 있을 뿐이다.군부통치의 과거를 벗고,부패한 구세력을 떨치고,권위주의적 권력에서 과감하게 변화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는 한 국민이 선택할 진짜 보수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편집국장대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