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명품 보증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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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 17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찾은 박모(29)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박씨가 전날 구입한 명품 선글라스에 흠집이 있어 환불을 요구하자 판매 직원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제품을 살 때 받았던 정품 보증카드로 물건에 하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직원은 보증카드에 적힌 판매담당자의 '확인' 문구를 보여 주며 "이것은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확인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박씨는 "물건을 살 때 직원이 '보증카드는 AS(사후수리) 받을 때 필요한 것'이라고만 말해 그런 줄 알았다"며 항의했다. 박씨는 제품을 제대로 확인해 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고 그런 내용이 보증카드에 들어가는 줄도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백화점 측은 환불해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백화점 측 관계자는 "우리 백화점의 모든 명품 매장을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9층에 있는 고객상담실에 가서 이 같은 운영 방식에 대해 항의했다. 하지만 박씨는 19일 "교환은 되지만 환불해 줄 수는 없다"는 선글라스 회사 측의 전화만 받았다.

백화점에서 소위 해외 '명품'을 팔면서 고객에게 주는 '보증카드'가 책임을 떠넘기는 '증명서'로 악용되고 있다.

25일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 세 곳에 확인해 본 결과, 모두 이 같은 방식으로 일부 명품 잡화를 판매하고 있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박씨의 사례에 대해 "우리 백화점에 왔더라도 교환.환불이 안 되는 경우"라고 말했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선글라스나 핸드백 등은 분쟁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대부분 정품 보증카드가 이렇게 이용되는지 전혀 모른 채 물건을 사고 있다. 회사원 김은영(32)씨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가방을 샀는데 보증카드에 대한 내용을 들은 적이 없다"며 "백화점을 믿고 샀기 때문에 흠집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보호원 김성천 연구원은 "박씨의 경우처럼 백화점이 거래상 중요한 계약 내용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약관규제법에 따라 교환하거나 환불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약관규제법 제3조 2항에 따르면 '사업자는 약관에 정해진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감사원은 최근 약관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신용카드사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작은 글씨로 쓰인 신용카드사 약관의 글씨체를 크게 바꾸고 카드사가 제각각 운용하는 약관도 표준약관으로 통일하도록 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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