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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나의 힘 … 스타는 잊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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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연예인의 연극 출연.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TV에서 본 익숙한 인물 한 둘 등장하는 건 최근 웬만한 연극에서 빠지지 않는 흥행 카드다. 이들의 출연 이유도 조금 뻔하다. “연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든지 “단절된 화면이 아닌 무대의 열정을 느끼고 싶다”거나 “관객과의 직접적인 호흡에서 오는 희열감” 등 대부분 예상 답안이다. 물론 이런 이유가 틀린 것도 아니요, 폄훼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다음의 두 배우는 조금 유별나다. 김지호(34)와 고수(30). 드라마·CF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둘은 현재 ‘프루프’와 ‘돌아온 엄사장’이란 연극에 각각 출연중이다. 과연 이들에겐 무대 뒤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는 걸까.

# “청소도, 무대 셋업도 내 몫”-고수

한류 스타인 고수는 강남구청 공익근무요원에서 지난 5월 소집 해제됐다. 드라마나 영화를 선택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그의 복귀작은, 지금껏 한 번도 서보지 못한 연극 무대였다. ‘연극열전2’시리즈중 하나인 ‘돌아온 엄사장’.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길 바라는 소속사로선 떨떠름했지만 고수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소개시켜 줄 사람들 있으니 한번 와 봐”라는 동료의 연락이 왔다. 박근형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골목길의 술자리였다. 수선스럽지도,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그저 작품 얘기를 많이 했다. 논쟁도 있었다. 연출가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이후 고수는 퇴근 이후엔 골목길 연습실을 찾아갔다. 거의 매일 갔다. 가서 멍하니 있으려니 쑥스러웠다. 청소를 하고, 심부름도 했다. 마치 극단 막내처럼 행동했다. 단원들은 부담스러워 했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용히 있었어요. 중요한 건 시간이잖아요.”

지난해 여름, 극단은 강원도 지역 5곳 순회 공연을 했다. 고수는 일주일 휴가를 내, 그곳도 쫓아갔다. 무대 셋업도 돕고, 뒷풀이도 어울렸다. 차츰 한 식구가 돼 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소집 해제후 연극 출연은 그에겐 당연한 수순이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박근형 연출가의 방식은 독특하다. 깔끔히 정리된 대본이 없다. 상황을 정하고 배우들에게 길을 찾도록 툭 던져놓곤 한다. 고수로선 ‘대략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동선도 없고 감정선도 없어요. 모든 걸 제게 맡기셨어요. 덕분에 생각하고 공부하게 됐어요.” 공연 초반엔 다소 어설펐지만 최근엔 조금씩 무르익고 있다는 평. 그를 보러 일본에서 건너온 팬까지, 고수가 무대에 서는 날이면 객석은 꽉 찬다. ‘연극열전’ 프로그래머인 조재현씨는 “내가 고수와 같은 낯선 상황이라면 도망간다. 하지만 고수는 보통 사람에겐 없는, 대범함 혹은 낙관성이 있다”고 전했다. 고수는 “기회가 되면 또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 “출연료 깎으세요”-김지호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고깃집. 연극 ‘프루프’의 시파티(공연이 막 올라가고 단합을 다지는 회식)가 있었다. 이날 분위기를 이끈 건 탤런트 김지호씨였다. “나 술 마시면 아무도 감당 못할 껄”이라며 웃음을 유도했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스태프를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마치 연출자나 제작자처럼 보였다. 시청율 20%대 중반을 넘긴,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로 한창 주가를 높인 연예인이란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연극 출연은 두 번째다. 2년 전 ‘클로저’란 작품이 데뷔작이다. 당시 제작자는 “처음이니 양해해 달라”며 전체 출연료로 1500만원을 제안했다. 그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이번 ‘프루프’도 같은 제작사다. 두 번째니 첫 출연보단 개런티는 당연히 올라야 할 터. 그러나 제작자는 “요즘 공연계가 어렵다”며 지난번과 같은 액수를 제시했다. 그런데 김씨의 반응이 의외였다. “저만 특별대우하실 필요 없어요. 다른 배우들과 형평을 맞춰주세요”라며 자진해 500만원을 삭감했다. 그의 총 출연횟수는 48회. 회당 20만원대 출연료다. 게다가 2개월 연습기간까지 합치며 1000만원 받고 4개월간 연극에 올인하는 셈이다. 그의 현재 미니시리즈 회당 출연료는 1000만원선. 그는 “요즘 방송국 친구들 만나면 밥 사 달라고 졸라요”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얘기 외부에 나가면 ‘잘난 척한다’고 욕 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란 말도 덧붙였다.

작품은 어려웠지만 막상 대본 연습에 들어가니 짜릿했다. 특히 그가 맡은 여주인공 캐서린의 복잡미묘한 심정이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공연 올라가기 일주일 전, 그는 포기했다. 도저히 그 미세한 캐릭터를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제작자에게 전화를 걸어 “받은 돈 다 토해내고, 손해 배상까지 할 테니 빼달라”고 사정했다. 반응은 뜨악했다. “그래, 그만하셔. 당신이 소화하긴 사실 힘들지.”

김씨는 밤새 울었다. “한편으론 분하고, 또 오기도 생기고…. 펑펑 울었더니 마음이 비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하기로 했죠.” 그는 요즘 한껏 물오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배우·연출 모두 각자의 인물 분석이 다 다르잖아요. 그걸 조금씩 합쳐가는 과정이 진짜 연기구나 느끼고 있죠. 뒤늦게 연기 바람 잔뜩 든 거죠.”

최민우 기자 [사진=연극열전·악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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