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짓궂은 생각을 했다.저 사나이를 유혹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변호사에 대한 복수 게임일 수 있다.
가령,서울에 돌아간 다음 그의 회사 사무실에 전화를 건다.그러면 비서 아가씨가 받을 것이다.도쿄에서 만나뵌 아무개인데,사업 일로 급히 상의드릴 것이 있다면서 언제 몇시에 뵈러가면 좋겠는지 여쭈어달라고 한다.그리고 가짜 번호를 댄다 .아리영의 서울집 전화번호 숫자를 일부러 잘못 일러주는 것이다.끝번호인 7번을 1번으로 댄다든가….
여비서가 사장님에게 보고하면,저 사나이는 어김없이 그 번호에다 대고 전화하게 할 것이다.그러나 전화는 엉뚱한 집에 잇따라걸리고,집 주인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다.사장님의 성화에 여비서는 「김 아리영」이름의 전화번호를 깡그리 뒤 질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헛수고로 끝난다.서울집 전화는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장님은 매제인 우변호사에게 아리영의 전화번호를 확인하지는 못할 것이다.여자의 비밀스런 「손짓」을 매제에게 보고할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틀 뒤쯤 또 전화를 건다.연락주시길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서 마침 회사 근처 모호텔 커피숍에 온 김에 전화드리는 것이라고 한다.앞으로 30분은 여기 있을 예정이라며,수화기를 얼른 놓아 버린다.십중팔구 사나이는 헐레벌떡 나타날 것 이다.만의 하나 나타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다.아리영은 애당초 그 자리에가있지 않으니까.그리고 나서….
부질없는 망상을 펴고 있는데,시동생 약혼녀가 아리영 컵에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미노(みの)를 한접시 시킬까봐요.』 『그래,그게 좋겠어요.
이 집 미노는 질기지도 않고 맛있더군.』 시동생이 얼른 화답했다. 『미노?』 아리영은 꿈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되물었다.
『소 양()의 일본말입니다.』 시동생의 설명을 약혼녀가 이어받아 소상하게 덧보탰다.
『요즘 우리말로는 처녑이라고도 하고 백엽(百葉)이라고 하는 소의 세번째 반추위(反芻胃)의 살을 일본에선 「미노」라 부릅니다.그런데 이게 바로 우리의 옛말이라면 곧이들리시겠습니까?정확하게 말씀드리면,한국 고대어가 일본화된 낱말이지요 .미노는 원래 우리 옛말로 「미내」「미개」라 불렸습니다.일본 옛 문헌에도「미내」「미개」로 돼있어요.「밀어내는 구실을 하는 기관」이란 뜻으로 그렇게 불렸나봐요.』 아리영은 새삼스레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