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영국 유학 가는 소설가 황석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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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씨는 "앞으로 20~30년간은 더 쓰고 싶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소설가 황석영(61)씨가 2년간 영국 런던대에서 수학(修學)하기 위해 19일 출국한다.

황씨의 영국행은 영국문화원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그는 런던대의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학 연구기관인 ‘소아즈(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객원 연구원 대우를 받게 된다.

12일 기자와 만난 황씨는 자신의 영국행을 일종의 ‘거리 두기’로 설명했다. 그가 떠나 있으려는 대상은 최후의 수고 한방울까지 남김 없이 쥐어짜야 하는 힘겨운 작품 생산 과정만은 아니다. 때때로 작품 외적인 행동과 발언을 요구하는 한국적 상황, 말하자면 ‘시대의 짐’도 대상이다.

황씨는 "푹 쉬면서 갑년으로 구분되는 내 작품 인생의 전반기를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수한 입담으로 '황구라'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영어회화를 아주 능숙하게 익혀 영어로도 '구라'를 풀 수 있도록 하겠다"며 껄껄 웃었다.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되자 월남해 서울 영등포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고교시절 청소년 잡지 '학원'을 통해 일찌감치 문명(文名)을 떨치고 단편 '입석부근'이 당시 최고의 작가 등용문이던 '사상계'에 뽑혀 등단한 일, 20대 초.중반의 방랑 경험과 방북 등 그의 문학과 인생 역정은 올 가을부터 자전적 장편소설로 구체화된다.

황씨는 자전 소설을 10월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기로 약속했다. 1년 반에 걸친 연재가 끝나면 랜덤하우스 중앙에서 세권 분량으로 출간된다.

-소아즈는 어떤 곳인가.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던 대영제국이 20세기 초에 만든 지역 문화학 연구기관으로 알고 있다. 아시아 관련 학과는 중국.일본.한국학 등 세개 과만 개설돼 있는데, 아마 중국과 일본 연구 위주일 것이다. 요즘 중국 문화의 인기는 대단하다. 이 때문에 한국 문학과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행사들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대산문화재단 등 민간 재단과 국내 기업, 현지 교민과 대사관 등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하지 않겠나."

-체류 조건은 괜찮은지.

"방문교수가 쓰던 방을 하나 내준단다. 대영박물관이 붙어 있는 학교 부근은 집세가 비싸 런던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빌라에 세들기로 했다."

-망명자가 아닌 신분으로는 첫 장기 체류인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한국에서 해온 것들과 거리를 두고 정리하는 계기로 삼을 생각이다. 외국 문인 등 인맥도 관리하고, 국제적으로 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한다고 할까. 자전 소설 집필은 나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50대50의 비중으로 두가지 일에 관심을 쏟을 계획이다. 근.현대사 속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밝히는 자전적 소설 쓰기는 서구 문학사의 주요 전통 중 하나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남겼다. 동양에서도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중국의 루쉰 등이 자전적인 글을 남겼다. 몇몇 우리의 선배들도 자전적인 작품들을 남겼지만 만족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노벨문학상 욕심을 낼 만도 하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스캔들이 될 것이다. 귄터 그라스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1972년 하인리히 뵐과 함께 노벨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상을 받지 못한 그라스는 '그 후 30년간 노벨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고 고백했다. 가을만 되면 우울해졌다는 것이다. 정작 99년 한 기자에게서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는 치통이 심해 막 치과에 가려던 참이었단다. 한시간 가량 드릴로 파고 쑤시는 치료를 받고 얼얼해져 돌아와보니 자신의 집이 취재진으로 포위돼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얘기를 '상에 연연해 하지 말고 일상적인 것을 차분히 해나가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역량있는 소설가.시인 20명쯤이 폭넓고 깊이있게 해외에 알려진 후 그 중 운좋은 사람이 받게 될 것 같다. 나는 생각지 않고 있고 개의치 않는다."

-다음달부터 '드라마 장길산'이 방영된다.

"SBS의 장형일 PD와 이희우 작가는 시청률에 관한 한 최고라고 들었다. 오락적 측면을 강조하다 보면 문학성은 사라지고 잘 만든 무협영화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영국에서 눈 딱 감고 지낼 작정이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유오성씨는 마음에 든다."

-최근 한 모임에서 여성 소설가에게서 '몸짱인 것 같다'는 칭찬을 받았다는데.

"며칠 전 건강 검진을 했는데 체력은 40대, 노안(老眼)은 아직 오지 않은 상태라는 판정이 나왔다. 특별한 건강 비결은 없다. 창작 열심히 하고, 또 잘 되면 엔돌핀인지 다른 피인지가 솟는 것 같다. 영국에서는 공원을 좀 달려볼 생각이다."

신준봉 기자<inform@joogn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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