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 받고부터 경제회생"궤변-전두환씨 재판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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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정=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4시간30여분동안 진행된 첫 재판에서 시종 당당하게 임해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과 대조됐다.
오후 재판 시작 5분전인 2시25분 법정에 들어선 全씨는 먼저 들어온 사공일(司空壹).안무혁(安武赫)씨의 「기립인사」를 받으며 착석.
全씨는 이어 옆자리에 앉은 안현태(安賢泰)씨등과 가볍게 귀엣말을 나누는등 여유있는 모습이었으나 개정시간이 다가오자 버릇처럼 왼쪽 다리를 가볍게 떨거나 의자등받이에 상체를 기대고 흔드는등 긴장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주저함없이 답변했으며 정치자금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특유의 궤변으로 일관했다.
全씨는 취임직후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가져온 정치자금을 받지않았더니 경제가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묘한 논리를 전개.
全씨는 『본인이 돈을 받지 않으니까 기업인들이 불안해 잠을 자지 못하면서 심지어 외국 망명까지 생각하면서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며 『그뒤 50대 재벌을 불러 안심을 시킨뒤 정치자금을 받기 시작했더니 경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 항변했다. 그는 이어 『정치가 안정돼야 사회가 안정되고 해외사업등 기업에도 도움이 돼 기업인들이 정치자금을 낸 것으로 생각한다』고진술하기도 했다.全씨는 또 『정치자금을 받고 영수증을 발행해 주지 않은 것은 떳떳하지 못한 돈이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관행이었을 뿐』이라는 묘한 진술을 하기도.
…全씨는 검찰 직접신문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대체로 표준말에 가까운 어투를 구사했으나 까다롭거나 난처.당혹스런 내용이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답변. 全씨는 박정희(朴正熙)정권 말기를 「국가부도직전의 경제위기」로 표현할 때와 경제안정을 자신의 업적으로 강조하면서 억센 억양의 사투리를 구사했다.
全씨는 이날 답변에서 『내가 현역군인으로 있다 바로 대통령으로 취임해 처음엔 경제를 솔직히 몰랐다』고 털어놓으면서 경제수석과 기업인으로부터 「실물경제교육」을 받았다고 소개.
그는 『朴정권 말기 유류파동으로 12달러하던 유가가 34달러로 폭등했다』거나 『런던 리보금리로 14%의 높은 이자를 줘도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지 않아 앉아서 외채이자만 급증,경제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기상황이었다 』고 자세히 설명. …全씨는 김성호(金成浩)검사가 국제그룹과 관련된 신문을하려하자 자신의 국제그룹 해체 관련설을 해명하려고 애쓰는 모습. 全씨는 『국제상사는 내가 사실과 달리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이 자리에서 좀 길게 설명을 해도 되겠느냐』며 재판장에게 발언기회를 요청했으나 재판장이 『반대신문때 하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불발.
한편 全씨는 김성호검사가 『법원에서 추가로 밝힐 남은 재산은없느냐』며 남은 재산 규모를 꼬치꼬치 캐묻자 『검찰이 수사를 워낙 야무지게 해서 아시다시피 없다』고 답변,방청객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全씨 가족=아버지의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법정에 나오던 재국(宰國)씨등 全씨의 세 아들은 법원정문을 들어서다 고 박종철(朴鍾哲).강경대(姜慶大)군 아버지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계란세례를 받는 등 봉변.
***취재진 질문에 미소도 이날 9시15분쯤 민정기(閔正基)비서관과 함께 법정으로 향하던 全씨 차남 재용(在庸)씨는 朴군의 아버지 박정기(朴正基.68)씨와 姜군의 아버지 강민조(姜民祚)씨가 『역적은 참회하라』며 던진 계란이 머리에 맞고 깨지는바람에 한때 승강이.
재용씨는 계란을 맞자 얼굴을 붉히며 朴씨에게 달려들었으며 장남 재국씨도 옆에서 제지하면서 『미친 놈도 있는 법이니 그만두라』고 독설을 내뱉는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全씨 차남 재용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어떠냐』는 질문에 『정신력으로 충분히 버티실거라 믿는다』며 비교적 담담한 모습.
재용씨는 또 『어머니(李順子씨)는 법정에 안나오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우리들만 보내셨다』고 간단히 대답.
◇호송=全씨는 이날 오전 서울송파구가락동 국립경찰병원 7102호 병실에서 옅은 하늘색 수의(囚衣)로 갈아 입은뒤 대기중이던 경기6도1006호 11인승 호송승합차를 타고 오전8시57분쯤 병원을 출발.全씨는 이날 평소처럼 오전6시 기 상,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눈치였으나 아침식사로 제공된 죽과 밥에는거의 손을 안댄 것으로 알려졌다 全씨를 태운 차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경찰병원 이권전(李權鈿)진료1부장이 동승.
…호송과정에서 보도진들을 태운 취재차량 40여대가 시속 90㎞로 이동하는 호송차량을 따라붙으며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카메라기자등 일부 보도진들은 차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촬영에 임하는등 「목숨을 건 취재」를 감행했지만 全씨를 태운 호송차량이 작은 구멍이 뚫린 철판으로 유리창을 모두 가려 全씨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엔 끝내 실패.
◇법원 도착=병원 출발 20분만에 서울지법 청사 지하 구치감호송통로 바로 앞에 도착한 全씨는 동행한 주치의 이권전(李權鈿)진료1부장이 내린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눈이 부신듯 잠시고개를 숙였으나 이내 여유있는 표정으로하차.
일반 미결수와는 달리 포승도 하지 않은채 미결수 수인번호「3124」를 가슴에 단 옅은 하늘색 수의 차림의 全씨는 당초 소문과는 달리 당당하게 교도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구치감으로 향했고『건강은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짓은 물론 미소를 짓기도 해 항간의 건강악화설을 무색케했다.
***방청권 100만원까지 ◇법정 주변=全씨 도착에 앞서 정호용(鄭鎬溶)의원이 오전8시35분쯤 가장 먼저 법원에 도착.
이어 9시7분쯤 안현태(安賢泰)전경호실장.성용욱(成鎔旭)전국세청장을 함께 태운 대형 호송버스가 서울구치소로부터 도착,구치감으로 직행.
全씨의 첫 공판을 보기 위한 방청권 암거래 가격은 최고 1백만원까지 치솟아 혹시 있을지 모를 全씨의 폭탄발언에 쏠린 지대한 관심을 반영.
25일 새벽부터 법원정문앞에서 밤을 새웠다는 한 심부름센터 직원(27)은 『50만원을 받고 표를 팔았다』며 표를 산 사람은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全씨 측근인사 같았다고 전언.
또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원들에게 대검으로 어깨를 찔렸다는 白순이(56.여)씨는 『광주 학살의 원흉인 全씨가어떤 모습으로 재판받는지 꼭 보고싶어 밤을 새워 기다렸다』며 한마디. ◇연희동=全씨 첫 공판이 열리는 동안 그의 연희동 자택은 일부 전경들이 집앞을 지킬 뿐 적막이 감돌았다.
아들 3명은 이날 오전8시30분쯤 아버지의 공판을 보기 위해서초동 법원으로 출발했고 부인 이순자(李順子)씨만이 자택에 남았다. 연희동측은 『李씨는 안방에서 간간이 TV만을 시청할 뿐일절 언급을 삼가고 있다』고 말했다.
표재용.장세정.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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