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for Money] 돈이 인생의 잣대는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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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몇 년 전 스위스 에서 벌어졌던 일도 비슷했다. 스위스 정부가 한 지역에 방사성폐기물저장고(방폐장)를 건설하기로 하고 주민 찬반 투표를 했다. 결과는 찬성 50.8%로, 반대를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다. 이 지지율에 만족 못한 정부는 방폐장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들에게는 500만원가량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 결정 이후 다시 투표를 했다. 찬성률은 24.6%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안 받는 것에 비하면 500원을 받는 게 그나마 낫다. 500만원은 말할 것도 없다. 왜 이렇게 돈에 관한 상식에 배치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돈을 받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실험자를 도와 그 일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호의를 베푼다는 생각에서 비교적 열심히 한다. 보조금 없이 방폐장 건립에 찬성하는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돈이 개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지 체계가 사회 혹은 관계 모드에서 비즈니스 모드로 바뀐다. 이런 상태에서는 돈의 액수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컴퓨터 작업에 대한 보수로 500원이나 방폐장에 대한 대가로 500만원은 터무니없이 적다. 어떤 사안을 돈 문제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많은 사람이 길거리 걸인에게는 1000원을 대수롭지 않게 준다. 반면 식당에 들어와 껌 한 통을 1000원에 파는 장애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며 불쾌해 한다. 전자는 자선 행위로 보는 반면 후자는 상거래로 간주해서다.

돈 문제로 인한 태도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제시한 이는 미네소타대 칼슨경영대학원의 캐틀린 보스 교수일 것이다. 세 집단에 각기 다른 컴퓨터의 스크린세이버 를 보게 한 최근 실험은 세계적인 화젯거리를 낳았다. 두 집단에는 각각 돈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면과 물고기가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보게 했다. 나머지 한 집단에는 그냥 까만 컴퓨터 화면만 보여줬다. 그리고 세 집단 모두에 어떤 사람이 다가가 옆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어떻게 의자를 빼주는가를 살펴봤다. 결과는 같았다. 돈을 본 집단이 항상 의자를 자신과는 가능하면 멀리 빼주더라는 것이다. 보스 교수는 “돈은 사람들을 더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고립되도록 한다”고 결론지었다.

재산이 많은 가장이 죽자마자 화목했던 가족이 사분오열되는 경우가 있다. 성실했던 사람이 복권 당첨 이후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사회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돈 문제로 급격히 바뀌면서 벌어지는 문제다. 돈 문제로부터 어느 정도 초연할 수 있어야 비로소 돈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행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형제애를 망칠까 두려워, 동생이 주운 금 덩어리를 버렸다는 김포(金浦)의 지혜는 그래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김방희 KBS 1라디오 '시사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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