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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여행>窺豹一斑-우물안 개구리처럼 식견이 좁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작년에 「붓대롱으로 하늘을 본다」는 뜻의 「관규」(管窺)(본지 95년4월26일자 45면)를 설명한 적이 있다.규표일반(窺豹一斑)도 비슷한 경우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는 중국의 서예를 최초로 집대성한 인물로 「서성」(書聖)으로 불린다.그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총명한 아들은 헌지(獻之)였다.결국 그의 서예는 왕헌지(王獻之)에게 이어져 세칭 「이 왕」(二王)으로 불린다.헌지는 7세 때부터 서예를 익혔는데 아버지 왕희지가 몰래 뒤꿈치를 잡아당겨도 끄떡도 하지 않은 것을 보고 대성할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어릴 때의 일이다.아버지의 서예 문하생들이 뜰에서 저포(樗蒲.일종의 도박놀이)를 즐기고 있었다.어깨 너머로 보고 있던 헌지가 갑자기 말했다.
「남풍불경(南風不競)이군!」 「남풍」은 「양자강 이남의 음악」,「불경」은 「힘이 없다」는 뜻으로 남풍불경은「세력이 미미함」을 뜻한다.
그러자 지고 있던 문하생 하나가 응수했다.
『이 도련님이 窺豹一斑하시는군.』 즉 표범의 무늬 하나만 보고 무슨 훈수냐는 빈정거림이었다.하지만 왕헌지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유진장(劉眞長)에게 부끄러운 줄이나 아세요.』 유진장은 도박을 하면서도 환온(桓溫.晉 簡文帝때의 장군)의 반역을간파했던 인물이다.그 문하생은 말문이 막혀 그만 옷을 훌훌 털고 일어나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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