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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사업 의혹] "청와대·정부부처 조사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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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이희범 산자부 장관이 25일 산자위에서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사업 투자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 검찰 수사 어디까지

철도공사(전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청와대와 정부 부처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일부 부처가 지난해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사업의 윤곽을 국가정보원 정보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물론이고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외교통상부 등 정부 부처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수사 분위기를 전했다.

국정상황실이 지난해 11월 9일 국정원으로부터 정보보고를 받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초대 국정상황실장인 이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 전대월 출두로 수사 급물살=수배 중인 하이앤드 전대월 대표가 26일 자진출두하면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조만간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을 시작으로, 전.현직 철도공사 간부 4명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방침이라고 25일 밝혔다.

◆ 어느 선까지 겨누나=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큰 밑그림은 이미 그렸다"면서 "청와대가 사전에 인지했는지와 이 의원 등이 관여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수사의 마지막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밑그림이란 철도공사가 문제의 사업을 주관했지만, 사업의 성격이나 규모로 볼 때 철도공사 이외의 기관이나 인물의 지원이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검찰은 현재까지 관련자 소환조사를 통해 사건의 전개 과정과 등장 인물들의 역할 등 윤곽을 파악했다.

특히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 허문석 박사 등 민간인 3인방과 철도공사 왕영용 본부장 등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것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앞으로는 사건 실체를 규명한 뒤 이광재 의원이 개입했는지, 국정원.외교부.통일부 등이 유전개발 투자사업을 측면 지원했는지 등을 밝히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은 철도공사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왕 본부장의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세호 건교부 차관과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은 "왕 본부장이 알아서 처리했다"며 관련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공직 사회의 생리에 비춰 볼 때 왕 본부장이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고 대규모 사업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철도공사 고위층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에 따라 사법처리 규모가 달라진다.

본지가 보도한 청와대 외교안보위원회, 국정원, 외교부, 건교부, 통일부 등의 개입 의혹도 검찰이 밝혀야 할 대목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국정원이 첩보를 입수한 시점이 지금까지 알려진 11월 초가 아니라 10월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주장대로라면 유전개발 투자 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사실을 정부가 알고도 제때 대처하지 않아 화를 키운 것이 된다. 특히 국정원의 정보보고 문건은 재경부.산자부.건교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현 경제정책 수석).경제보좌관 등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철도공사 관계자에 이어 정부 부처의 사업인지 여부를 확인한 뒤 청와대 부분을 수사할 계획이다.

◆ 정부부처 측면 지원했나=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24일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이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 사할린 유전개발 현황 보고서를 여러 차례 올렸다며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이 중 5월 31일자 문서에는 정태익 당시 주러 대사가 사할린 6광구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허문석씨는 지난해 6월 전대월씨를 만나 유전개발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합의하고 자금 마련에 나섰다.

검찰은 두 가지 움직임이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 중이다. 우리 정부가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석유 자원 확보 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2일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인 허문석 박사가 산자부에 '해외자원개발사업계획서'를 신고한 뒤 하루 만에 처리된 것도 정부가 적극 지원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허 박사는 신고서가 수리된 다음날 우리은행에서 대출받은 620만 달러를 러시아 알파에코사에 송금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부 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관련 부처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pinejo@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 산자위 "하루 만에 사업 통과 배경 뭔가"
청와대 "국정상황실 업무처리 정상적"

국회 산자위는 25일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사업 의혹을 다뤘다.

한나라당은 산자부가 철도공사 유전 개발 사업 제안을 하루 만에 통과시켜준 이유를 추궁했다. 이병석 의원은 "석유공사조차 사업성이 없다고 한 사업을 철도공사가 추진하는데 이를 산자부가 이례적으로 단 하루 만에 처리해준 배경이 뭐냐"고 따졌다. 같은 당 이규택 의원은 "지난해 국정원이 청와대에 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사업에 대해 정보 보고를 할 당시 산자부에도 공문을 보냈다는데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하루에도 각 부처로부터 수십 건의 공문을 받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보고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보고를 받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철도공사에 확인한 결과 나름대로 전문가를 영입해 추진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한병도 의원은 "사기극을 둘러싼 근거 없는 의혹을 놓고 계속해서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청와대는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일일 현안점검 회의를 열어 "철도공사 유전 개발 사업 관련 정보보고에 대한 국정상황실의 일 처리 과정은 업무의 성격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처리 과정이었음을 확인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김만수 대변인이 전했다. 김 실장은 "다만 민정수석실이 이 사안을 관리했던 3월 이후에는 국정상황실이 민정수석실과 과거의 조사 사실을 공유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명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청와대는 이미 이 사건과 관련한 특검까지도 수용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미 모든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했다"며 "무책임한 의혹 제기와 구 시대적 정치행위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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