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안기부의 '아마추어性'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정일(金正日)의 전동거녀 성혜림(成蕙琳) 일행 탈출사건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안기부의 태도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정부내에서조차 『안기부의 처리방식이 서투르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북한체제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측이 도움을 주는데는 반대가 있을 수 없다.그러나 성혜림 문제는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북한의 외교관이나 군인 등의 귀순과는 다른 차원에서 신중히 다뤄졌어야 했다는 지적이다.성혜림이 비록 본처 는 아니라할지라도 김정일의 장남을 낳은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혜림을 한국에 데려올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북한체제의 붕괴조짐을 국민에게 좀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정도다.얻을 수 있는 정보는 김정일의 사생활과 습관등에 관한 것이지만 이 정도는 굳이 성혜림을 한국으로 데려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반면 우리의 부담은 상당수준이다.정부의 외교안보통일문제 관계자들은 『성혜림이 한국에 있는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전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극한대립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제적으로도 우리가 「공작」했다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중인 적(敵)에 대해서도 마지막 선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궁지에 몰린 쥐를 도망갈 구멍도 주지않고 몰아대고양이에 덤비도록 만드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북한이 혹시라도 보복테러로 나설 경우 우리에게 득될 것은별로 없다.
안기부가 이런 이해득실조차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정부내 안보정책관련 고위당국자는 『안기부가 얼마나 개입됐는지 분명치 않지만 만일 현장팀이 임의로 판단해 진행시켰다면 대단히 위험하다』면서 『만일 실무책임자들의 중 간검토를 거쳤는데도 걸러지지 않았다면 안기부 내부의 판단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를 놓고 관계기관간 수평적 의견조율조차 없었다는 것도 충격이다.청와대 한관계자는 『보안유지 필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중대정책의 최종결정과정에서는 정부내 고위층에서의 의견수렴은 있었■야 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아직도 남북관계의 알파와 오메가를 안기부가 관장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같다』는 지적도 새겨볼 만한 얘기다. 더구나 『성혜림 일행의 탈출과정에 안기부가 개입된 듯한 인상을 준 것은 북한이 억지부릴 구실을 만들어준 것』이란 비판도있다.설혹 개입했더라도 철저히 부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안기부의 아마추어성」을 보여주는 것같아 씁쓸하다.
김두우 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