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권력충돌은 5년 단임제 ‘고질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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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하다. ‘대통령 기록 유출 논란’ 탓이다. 마치 두 개의 청와대가 충돌한 듯한 상황에 “대통령 한 명은 청와대에, 또 한 명은 ‘봉하대(봉하마을+청와대)’에 산다”는 정치권의 뼈 있는 조크가 나올 정도다.

이런 충돌은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20여 년간 신구 권력 간 투쟁은 5년마다 돌아오는 ‘정기 행사’였다. 정권이 계승되든 교체되든 늘 그랬다. 현 대통령 단임제의 ‘폐해’이자 개헌론자들이 눈여겨보는 대목이기도 하다.

◇‘맞수’ 안 잊는 대통령들=신구 권력 간의 신경전은 정치적 맞수들끼리 정권을 주고받은 뒤 특히 심했다. ‘대표 맞수’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 간 권력 교체기 때가 대표적인 예다. 1998년 출범한 DJ 정부는 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 사태의 책임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이 때문에 강경식 전 부총리 등 YS의 측근들은 법정에 서야 했다. YS도 청문회 답변을 요구받았다. 이 과정에서 YS에게는 ‘국가 경영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멍에가 남았다. 이런 YS의 집권 기간 중에는 전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곤욕을 치렀다. 그의 비자금이 드러나고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실형을 살았다. 두 사람은 90년 삼당 합당으로 한 당이 됐지만 87년 대선까진 1, 2위를 나눠 가진 맞수였다.

◇친구·동지끼리도 충돌=신구 권력 투쟁은 정권이 재창출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육사 동기로 친구 사이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교체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88년 겨울부터 전 전 대통령은 2년여를 백담사에서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자신이 연관된 ‘일해재단 비리’ ‘새마을 비리’ 등이 잇따라 터졌기 때문이다. 대북 문제에서 궤를 함께한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 간에는 하필 ‘대북 송금 특검’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대통령 단임제의 한계”=이처럼 신구 권력 투쟁이 상습적으로 되풀이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통령 단임제의 폐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원대 엄태석 교수는 “단임 대통령은 제도의 특성상 레임덕(정권 말 권력 누수 현상)이 길다”며 “이 때문에 새롭게 등장한 권력은 싫든 좋든 인기가 떨어진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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