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강국’을 향한 일본의 야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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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01면

7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쿠다 총리. 도야코 로이터=연합뉴스

‘저탄소 강국’을 향한 일본의 야망이 꿈틀대고 있다. 지구촌은 빙하가 녹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CO2)와의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일본의 주도 아래 7∼9일 열린 주요 8개국(G8) 확대 정상회의에선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후쿠다 총리 “CO2 통제 능력이 곧 경제성장 능력”

일본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이루지 못한 ‘세계 제패’의 꿈을 그린 파워(Green Power)로 실현할 태세다. 일본의 ‘저(低)탄소 강국’을 향한 꿈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저탄소 사회’의 실현이 중요하다. 그 주역은 국민 여러분이다.”(3일, 국민에게 보내는 e-메일 매거진) 후쿠다는 이번에 ‘일본=환경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유럽과 공동전선을 펼쳐 CO2 감축에 소극적인 미국·중국을 설득하고 압박했다.

반면 취임 5개월째인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파동·촛불시위 같은 국내 상황에 발목이 잡혀 환경·에너지 분야에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에너지 절약이나 CO2 감축을 위한 장·단기 비전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9일 G8 확대 정상회의에서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국가 중기목표를 국민적 합의를 모아 설정해 내년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년 중 발표할 계획’이라는 부분을 놓고 청와대와 관계부처 간에 이견이 있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에야 ‘내년’이라는 시한을 넣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 사이에선 “충분한 협의 없이 공격적인 환경정책들이 발표돼 걱정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저탄소 강국’ 구상은 그린 산업 육성을 통해 착착 실천되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 중심부에 자리잡은 CIS 타워. 맨체스터에서 둘째로 높은 지상 118m의 이 빌딩은 전력의 96%를 태양광 발전으로 조달한다. 건물 외벽에는 개당 80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일본 업체 샤프의 태양광 패널 7244개가 부착돼 있다. 연간 발전량은 태양광 발전 빌딩으로는 유럽 최대인 18만kWh에 이르러 조명과 냉난방을 거뜬히 해결한다.

일본이 만든 태양광 패널은 이미 세계를 점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농장, 독일의 축구 경기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공항 등 지구촌 곳곳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 간사이 지방의 미에현 가메야마(龜山)에 있는 샤프 공장도 태양광 발전을 사용하면서 ‘클린 공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공장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연간 3400t의 CO2 배출을 줄이고 있다.

일본의 환경 기술은 태양광 발전 기술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연비를 두 배 이상 높인 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해 팔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외교사를 새로 쓰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침략자라는 과거사 때문에 지금까지 개발도상국 경제 지원과 평화유지군(PKO) 파견 외교를 펼쳤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경제 외교는 개도국의 마음을 돈으로 사려 한다는 비아냥만 듣고, PKO 파견은 군사대국화 우려 때문에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이런 일본에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위기는 기회로 작용했다. 1960년대 심각한 환경 오염을 경험했던 일본은 공해를 줄이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일본은 70년대 제1차 오일쇼크 때보다 더 적은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73년 2억8969만t→2006년 2억4673만t). 일본과 마찬가지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과는 정반대다. 일본 에너지보호센터 쓰지모토 히사카즈 부장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를 구축한 덕 택”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일본의 에너지 효율은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의 2배, 중국·인도의 8배에 달한다.
환경 외교의 파워는 중·일 정상외교를 통해 입증됐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5월 방일 때 마쓰시타 공장을 방문해 “일본의 우수한 환경·에너지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정부가 영유권 분쟁이 치열했던 동중국해 중국 관할 가스전에 대해 중·일 공동개발을 허용한 것도 일본의 에너지 개발 기술을 탐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후쿠다 총리는 G8 정상회의에서 “CO2 배출을 통제하는 능력이 지속적인 경제성장 범위를 결정하는 ‘탄소 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며 “일본은 솔선수범해 지구온난화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경찰’ 역할을 했던 미국이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조연으로 전락한 사이 일본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환경 리더십은 개도국에도 뻗치고 있다. 후쿠다는 “오랫동안 축적된 환경기술을 하루빨리 이전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아프리카에는 정부개발원조(ODA)를 두 배로 늘리고 개도국에는 앞으로 5년간 100억 달러(약 10조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G8 정상회담에 주요 배출국 자격으로 초청받은 인도네시아에는 3억 달러의 ‘쿨 어스(Cool Earth) 지원금’을 제공했다. 일본의 ‘환경 장학금’을 받는 개도국들이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 대일 경제협력 확대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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