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최후의 자살특공대 18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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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3국
[제8보 (158~182)]
白.趙治勳 9단 黑.朴永訓 5단

해가 졌는지 창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엔 벌써 '박영훈 우승'이란 글귀가 올라오고 있다.

趙9단은 솜처럼 지친 몸을 쥐어짜내 힘겹게 166으로 붙인다. 지금 반면 10집쯤 뒤져있을까. 그렇다면 추격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가닥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앙을 먼저 깎고 귀를 지킬 수 있다면 바둑은 미세해진다. 하지만 박영훈은 예상대로 귀부터 달려든다. 167이 날카로운 수. 지치고 상처입은 趙9단의 옆구리에 또한번 일격을 가하고 있다.

168은 어쩔 수 없는 후퇴다. '참고도1'의 백1로 꽉 받아 다 잡고 싶지만 흑2 젖히면 A의 돌파와 B의 삶이 맞보기가 된다. 176도 어쩔 수 없다. 대개 '참고도2' 백1로 치중하면 죽는 법이지만 지금은 흑6이 선수여서 더 크게 살아버린다.

179까지 귀를 파내며 朴5단은 다시 한걸음 우승컵 앞으로 나아갔다. 그냥 우승컵이 아니다. 2억원짜리 세계대회 우승컵이다. 바둑 삼매경에 빠져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던 18세 박영훈의 눈에도 그 우승컵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趙9단의 182가 반상에 떨어졌다. 묘한 곳을 끊어왔다. 검토실에선 잡아도 되고 물러서도 된다고 한다. 박영훈은 긴장한 눈으로 182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 수가 폭탄을 가슴에 두른 최후의 자살특공대임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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