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터뷰>창간30돌 "창작과 비평"편집인 白樂晴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기자가 『창작과 비평』에 눈을 뜬 것은 70년 가을호에 실린신경림(申庚林)씨의 시 『산 1번지』를 통해서였다.10대후반의그 무렵,노량진산28의 골방에서 만난 『산 1번지』는 「바람이집집마다 지붕을 덮은 루핑을 날리는」산동네에 서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아픔으로 채워져 있었다.그때부터 기자는 『창작과 비평』(『창비』)의 반거들충이 수강생이 되었다.70년대를 관통하며『창비』에 글을 쓴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지만,소설로는 김정한.이문구.황석영.송 영.윤흥길.조세희.박태순.현기영 등이 새롭고 시로는 고은.김지하.조태일.민영.김남주.정희성등이 생각난다.그리고 이영희.강만길.박현채.이오덕 등의 새로운글과 물론 다 읽지는 않았지만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사회사』를 비롯 한 『창비신서』는 한 잡식성 학생의 즐거운 소일거리였다.80년 『창비』가 강제폐간되고 다시 『창비』를 만난곳은 82년께 서울태평로 삼성본관 뒤 언덕빼기 공터였다.누군가한질짜리 『창비』영인본을 갖다놓고 구입신청서를 받고있었다.기자는 값만 물어보고 사지 않았다.아마 술생각이 더 간절했던 것같다. 백낙청(白樂晴.58.문학평론가.서울대영문과교수)씨가 『창비』를 창간한 66년은 그의 나이 28세되던 해였다.당시 그의패기에 찬 권두평론-문학은 현실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야 하며,현실 구성원이 처한 위기를 반영해야 하고 나아가 그 구성원 대다수의 복지를 위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창비』의 사시(社是)처럼 돼 그후 일관되게 『창비』가 잘못된 현실에 맞서온 힘이 돼왔다.
-30년에 걸친 격동의 세월동안 『창비』가 나름대로 우리사회의 교사역을 자임해 왔는데 자부심이 남다르겠습니다.
『교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창비」의 의견을 주장하고 설득해 왔다는게 보다 정확하겠군요.70년대 유신하에서는 학교나언론이 바른 말을 못하는 상황이어서 거기서 못하는 것을 하자는사명감을 가진 건 사실입니다.그때문에 수난이 거듭됐지요.그때나지금이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진지하게 사상을 모색하는 글▶제대로 된 문학을 소개하는 것▶가려진 진실을 드러내는 글 이 세가지가 편집방침이라는 것입니다.』 -도전적인 편집방향이 알려지면서 창간호에 대한 반향이 컸지요.
『2천부를 찍었는데 1천5백부 가량 나갔으니까 성공적이었지요.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창간 1년여가 지난 67년 여름부터 방영웅씨의 장편「분례기」가 연재되면서였어요.고정독자가많이 생겼지요.
시인 김수영씨가 생각납니다.당시 어느 출판사가 유명 문인들을필자로 망라한 호화판 계간지를 창간했어요.그 때 어느 문인모임에서 김씨가 자신의 글도 실린 그 잡지를 비판하기를 「라이터는론손,만년필은 파커가 최고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글만 실려 틀렸다」고 했어요.그때 처음 인사를 나눴는데 「창비는 생각이 분명해 꼭 성공할 것」이라며 치켜세우던데 그렇게 됐나요.』 -반향중에는 기성문단의 반발도 있었겠습니다.
『몇호가 거듭되니까 바깥으로부터의 반발이 느껴지더군요.가령 염무웅씨가 「선우휘론」을 실으니까 선우휘씨가 「창비」나 염씨를직접 지칭하지는 않고 「문단에 사회과학주의비평을 하는데가 있다」며 일종의 색깔시비를 걸었어요.나중에 「사상계 」에서 「작가와 평론가의 대결」이란 표제 아래 저와 선우휘씨의 대담을 마련하기도 했어요.』 ***선우휘씨와 문학논쟁 문단내에서의 논의는문학논쟁이라는 긍적적 면이 있어 좋은데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았고 문제는 당국과의 마찰이었습니다.』 -그 마찰때문에 꽤 험한길을 걸어왔는데 판금따위는 그렇다치고 연행당한 경우도 여러차례였지요.두렵지 않았습니까.
『명색이 「민족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응전」이라는 신념을 갖고 책을 냈는데 설사 두렵다하더라도 내색할 수 있었겠습니까.』70,80년대 『창비』수난사는 꽤 복잡해 정리가 잘안된다.80년 계간『창비』강제폐간,85년 출판사 등록취소,백낙청.주간 염무웅 강제해직,주간 이시영 구속(89년),75년 봄.여름호 연속 판금,시집『국토』(조태일)『한국의 아이』(황 명걸),이영희씨의 『전환시대의 논리』『8억인과의 대화』,김지하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대설 南』판금등이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창비』가 40대 이상에게는 어떤 향수어린 대상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만 주독자층일 그 밑세대에게는 딱딱하고 골치아픈 잡지라는 인식도 있습니다.변화를 줘야되지 않을까요.
『「창비」는 문학.문학비평을 중심으로 문학과 사회과학 또는 문학과 인문과학의 소통문제에 쭉 관심을 둬왔습니다.그것도 시국문제와 연결해서 다뤘지요.』 ***현실참여 문학에 관심 『이제정치.경제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그에따라 독자들의 관심사항도 변했으니 거기에 발을 맞출 생각입니다.그렇다고 시류에 영합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사실 「창비」의 성과는 그때그때 상황논리에맞추지 않고 「창비」논리에 따른 중심을 지켜온데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문학아닌 예술분야를 다루는데는 미흡했습니다.특히 요즘 젊은층의 큰 관심사인 영상분야에 많은 비중을 둘생각입니다.30주년 기념 봄호에는 번역글이지만 「사이버 스페이스의 탐험」이라는게 나갑니다.인공공간의 긍적적 가능성과 함께 현 사회여건의 인문철학적 개선없이 과학기술문명이 그대로 나아갈때 초래될 문제도 함께 짚는 글입니다.』 -『창비』의 창간 정신은 살리면서 편집영역은 더 넓힌다는 말인데 앞으로 발전 구상은 있습니까.
『희망은 세계적인 잡지가 되는 것입니다.세계 유수의 정론잡지와 인적.물적 교류를 활발하게 해볼 작정입니다.국내 필자의 글이든,번역글이든 하나하나가 세계수준에 떨어지지 않는데까지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들텐데 근년들어 창비가 베스트셀러를 많이 내 돈 걱정은 없겠습니다.
『계간지 자체도 적자는 아닙니다.현재 1만7천여부가 나가는데이런 유의 잡지가 이렇게 팔리는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입니다.
영국의 권위있다는 격월간 『뉴레프트 리뷰』는 9천부에 불과해요.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입니다 .시집이 수십만부씩 나가는 곳은 이 나라밖에 없어요.단행본으로 번 돈은 어쨌든 『창비』의 세계화를 비롯해 출판 쪽으로 환원할 것입니다.
』 ***계간지로 국내최대 부수 출판사 창비는 현재 베스트셀러의 산실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수십만부에서 수백만부까지 나간책을 대충 손꼽아도 『동의보감』『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서른 잔치는 끝났다』등 시.소설.교양서에 두루걸쳐 홈런을 치 고 있다.
-책을 잘파는 비결이 있습니까.
『「동의보감」이 창사 20여년만의 베스트셀러이니 고생한 것에대한 선물 정도라고 칩시다.』 창비는 27일 오후6시30분 서울 세종홀에서 자축연을 갖는다.또 4월24~26일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새로운 전지구적 문명을 향하여-민중과 민족,지역운동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도 열 예정이다.페리 앤더슨.부르스 커밍스 .노마 필드.보리스 카갈리츠기 등 해외학자와白교수,『창비』주간 최원식(인하대교수)씨가 참여한다.
만난사람=이헌익 문화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