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연극 "딸의 침묵" 주역 김정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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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극단 씨어터가 세미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딸의 침묵』은그리 낯설지 않다.이미 오래전에 원작 제목인 『너츠』(Nuts)로 공연된바 있고 『딸의 침묵』이란 이름으로도 한차례 공연을가졌던 작품이다.
연극의 성격도 한국 관객들에게 몹시 익숙한 내용이다.엄마의 재혼으로 계부와 살게되면서 어릴 때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여자의 얘기다.한국 연극의 한 맥을 형성하고 있는 페미니즘 연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설정이다.또 얼마전 자신 을 어릴 때부터 성폭행한 아버지를 남자친구를 통해 살해한 김보은사건과도 너무나 닮은 꼴이다.한마디로 『딸의 침묵』은 연극에서건,현실에서건 어디서 한번은 본듯하다.
그래도 이 작품을 「새것」으로 만드는게 있다면 여주인공 글라디아역의 김정연(24)이다.그의 본업은 패션모델.93년 SBS주최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포토제닉상을 수상한 그는 모델로서의입지를 굳히는 듯했다.TV와 CF에서의 「반짝경 기」도 누렸다.SBS-TV 『출발 서울의 아침』,KBS-TV 『독점 여성』등의 프로에 리포터와 객원MC로 바쁘게 불려다녔고 화장품광고등CF도 부지런히 찍었다.모델로는 흔치 않게 SBS-TV 『두형사』,MBC-TV 3.1절 특집극 『노래만들기』,KBS-2TV『갈채』등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 확실한게 없었다.그의 키 174㎝는 모델을 하기엔 약간 작고 TV드라마를 하기엔 컸다.객원MC,드라마의 주변역,CF모델로 뛰어 다니는 생활에 그는 한순간 자신이 가짓수는 많지만 먹을 것 없는 빈약한 한정식같다는 점을 깨달았다.그래서 잡다한 일들을 정리하고 연기에 매달리기로 작정했다고한다. 『연극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연기공부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뛰어들었어요.이번 작품을 통해 제 자신이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절감했어요.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감정을 끌어올리면 대사가 흐려지고 대사를 또박또박 말하기위해 신경을 쓰면 감정이 건조해졌어요.프로라면 스테레오가 가능해야 하는데….』 처음 선 무대에서 그가 맡은 역은 고급창녀.
머리.손.발.입술등 신체부위별로 가격이 매겨진 낯설디 낯선 인생이다.그는 마음으로 이 역할을 읽어내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고털어놓는다.비옷을 입은듯 거북하던 연기가 속옷처럼 편안해질 때까 지 연기만 하겠다고 한다.
글=남재일.사진=백종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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