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Watch] 위기의 미래에셋, 위기의 박현주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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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거의 빼놓지않고 나누는 대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론 쇠고기사태 및 촛불집회의 향방이다. 그 끝이 어딘지 걱정하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둘째는 의외로 미래에셋에 대한 얘기가 많다. 위기의 경제상황에서 내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얘기로 화제가 옮겨지면 여지없이 미래에셋펀드가 도마에 오른다. 그만큼 미래에셋에 기대를 걸고 돈을 넣은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대부분 급락하는 수익률로 속앓이를 하고 있었고, 지금이라도 빼야하는 것인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답답해하고 있었다.

서로 아우성치며 투자하겠다고 나설 때가 언제나 상투였다는 금융시장의 역사가 이번에도 통했다는 진단과 함께 어리석었던 판단을 후회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 성공투자의 신화인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통찰력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투자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신 전하고 박 회장이 제시하는 처방전을 기사를 통해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노(No)’였다. “지금은 인터뷰에 응할 상황이 아니며 마침 해외출장까지 잡혀 곤란하다”고 홍보담당 임원은 전했다.

박 회장은 올 들어 언론에 노출되길 꺼리고 있다. 그는 요즘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국내보다 길다. 지난해 언론을 적극 활용하며 공개 행보를 보였던 자신감과는 대조적이다. 이유는 급박한 글로벌 시장 상황을 현장에서 점검하고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은 위기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 펀드시장의 고통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식형펀드 판매액의 절반가량이 미래에셋 상품이다. 펀드투자 열기가 절정을 이뤘던 지난해 9∼10월에는 투자액의 70∼80%가 미래에셋으로 쏠렸다. 현재 미래에셋 펀드의 평가 손실액은 8조원에 이른다.

급기야 최현만 미래에셋 부회장이 나서 공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최 부회장은 최근 중국펀드 및 인사이트펀드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길게 보고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들을 염두에 두는 듯했다.

그러나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다. 미래에셋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우선 인사이트펀드 문제다. 지난해 10월 말 이 펀드를 내놓으며 미래에셋은 ‘박현주 투자철학의 결정판’임을 숨기지 않았다. 박현주 신화를 믿고 한번 투자해 보라는 메시지였다. 투자 지역과 대상 증권을 정해놓지 않는 ‘스윙 펀드’ 컨셉트를 놓고 ‘깜깜이 펀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단호하게 반박했다. “중국·인도 등 특정 지역 펀드로 돈이 쏠리는 것을 차단하며 새로운 완충지대로 투자의 물꼬를 돌리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박 회장은 “중국 증시에 거품이 끼여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인사이트펀드는 뚜껑을 열어 보니 중국 주식에 자산의 66%를 몰아넣었다. 중국펀드의 위험을 피해 대체투자수단을 원했던 투자자들로선 어안이 벙벙할 일이다. 손실은 클 수밖에 없었다. 설정 이후 8개월간 26%의 손해를 봤다. 5조원의 판매액 중 1조2000억원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인사이트펀드 출범 당시 중국 증시에선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매입을 위해 긴 줄을 서며 열광했던 반면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의 고수들은 발을 빼고 있었다.

아쉬움은 크다. 인사이트펀드가 채권 등 현금성 자산으로 돈을 돌려놓은 뒤 한 박자 죽여 주식을 본격 편입하기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원래 스윙펀드란 게 그럴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미래에셋은 증시의 상투권에서 열광하는 일반 투자자들의 긴 투자행렬에 끼어 잔뜩 거품이 낀 값에 중국 주식을 사들였다. 미래에셋 답지않은 행보였다. 그리곤 이제와서 "장기적으로 보자. 우리를 믿고 기다려 달라"고 호소한다.

길게 본다는 말만큼 애매한 얘기가 없다. 5년, 10년 뒤를 내다본다면야 중국 주식값이 지금보단 올라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게 길게볼 요량으로 돈을 넣은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아직도 한국 투자자들이 길게 본다는 개념은 1-2년, 길어야 3년 정도 아닐까? 미래에셋은 당시 운용의 판단 착오를 솔직히 고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투자전략을 제시하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막연히 기다려 달라는 얘기로는 뿔난 투심(投心)을 달랠 수 없다.

다음은 펀드 수수료 문제다. 지난해 금융감독 당국까지 가세한 펀드 판매수수료 인하 논쟁 때 미래에셋이 앞장서 반대했다. 미래에셋은 “펀드 투자자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위해 수수료를 거꾸로 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인사이트펀드를 통해 이를 실천했다. 일반 주식형펀드의 판매·운용 수수료가 연 2.5% 선인데 비해 인사이트펀드는 3.5%로 크게 높였다. 은행 등 펀드 판매사들이 돈 되는 미래에셋 펀드를 더 열심히 판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게 제발등을 찍은 결과를 낳았다. 미래에셋으로의 쏠림은 심해졌고, 미래에셋은 지금 그 쏠림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에 묻고 싶다. 높은 펀드수수료를 받으며 투자자에게 보여준 고품질의 서비스라는 게 도대체 뭐가 있었는가? 나도 미래에셋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무슨 서비스를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펀드 수익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운용사에 주는 운용수수료는 아깝지 않다. 그러나 단순히 펀드 판매의 매개역할을 한 은행 등 판매사에 매년 꼬박꼬박 1.5% 정도의 높은 수수료를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시장에 않좋은 상황에선 더 그렇다. 운용수수료를 올리더라도 판매수수료는 대폭 내리는 게 순리다.

그럼에도 미래에셋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 미래에셋이 이뻐서가 아니다. 미래에셋이 곧 한국의 펀드시장을 의미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의 위기는 곧 한국 펀드산업의 위기다. 미래에셋의 짐을 덜면서 한국 펀드산업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선 시장의 쏠림 현상을 완화해 나가야 한다. 박현주 회장도 “한국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해선 제2, 제3의 미래에셋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때마침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신예 자산운용사들이 새 상품을 들고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제 미래에셋과 그들의 상품에 대해 냉정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좋다니까 덩달아 가입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다 너무 많은 사람이 후회를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좋은 펀드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증권업계도 미래에셋 펀드를 대신 팔아 판매 수수료를 얻는데만 안주하지 말고, 더 좋은 펀드를 만들어 미래에셋과 당당히 경쟁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게 미래에셋이 타성과 오만에 빠지지 않고 더 강하게 생존하도록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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