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나눔 실천한 '컴퓨터 맥가이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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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사흘을 아름다운 가게를 찾아 기증받은 컴퓨터를 고치는 봉사에 나서고 있는 이장환씨. [임현동 기자]

"우리 애들이 초등학생인데 이 컴퓨터 쓸 만한가요?"

지난 10일 오후 아름다운 가게 안양 명학점 전자제품 코너.

17인치 모니터와 팬티엄Ⅱ 컴퓨터를 이리저리 살피던 손님이 묻자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자원봉사자가 "간단한 문서작업과 인터넷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가격도 시중보다 절반 이상 쌉니다"라며 적극 권한다.

"제가 직접 수리한 것이라 품질을 보장합니다. 문제있으면 언제든지 가져오세요"라는 설명을 덧붙이자 손님은 주저없이 구입했다.

명학점이 문을 연 지난달 중순부터 전자제품을 수리하고 판매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장환(50.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씨. 컴퓨터 수리.판매업소를 운영하는 李씨는 매주 사흘씩 아름다운 가게에 나와 자신의 기술과 노동력을 무료 제공한다.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13년 동안 TV.오디오.비디오 등 가전제품을 수리해온 그는 1980년대 말부터 컴퓨터 수리.판매점을 운영해와 가전제품이라면 못 만지는 게 없는 만물박사다.

"그동안 먹고살기에 급급했는데 내가 가진 기술로 남을 돕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아름다운 가게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매주 화.목.토요일 오전 9시면 매장 안 한평 남짓한 '숨쉬는 공방'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오후 2시까지 시민들이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한 컴퓨터와 프린터.스캐너.스피커 등을 수리한다.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구식이라 상품성이 없는 경우 CD롬.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하드디스크 등 재사용 가능한 부품을 분리해 낸다.

하루 평균 그의 손을 거쳐 되살아나는 컴퓨터는 10여대. 하지만 고쳐놓기 무섭게 팔려나가 "컴퓨터 나온 것 없느냐"는 문의전화가 줄을 잇는다.

그는 또 고객이 관심을 보이면 전기히터.전기밥솥.커피메이커.발마사지기.전자레인지.토스터 등 매장 안에서 취급하는 온갖 전자제품의 사용법을 일일이 가르쳐 준다. 중고 물건이라 사용설명서가 없기 때문에 기술자인 그가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일주일의 절반을 아름다운 가게에서 보내는 그는 "돈 많이 벌어 물려주는 것보다 아버지가 세상을 열심히 살았다는 기억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며 "자원봉사하는 것을 구경왔던 딸아이가 아버지처럼 봉사하겠다고 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李씨는 잔고장인데도 버리고 새 물건을 사는 세태가 안타까워 숨쉬는 공방을 재활용 체험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물건을 오래 아껴쓰는 습관을 익히도록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박현영 기자<hypark@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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