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앨범에서 ‘포이즌’ ‘페스티벌’처럼 사람들과 신나게 부를 수 있는 곡이 없어 아쉬웠어요. 좋아하고 익숙하던 옷을 다시 입은 느낌이에요.”
디스코는 레트로(복고)다. 원더걸스·쥬얼리 등 많은 가수들이 써먹었던 소재다. 하지만 엄정화는 식상할 수 있는 레트로에 새로운 색깔을 입혔다. 대중 음악계의 트렌드 정점에 있는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대표 양현석)와 손을 잡은 것이다. 뛰어난 보컬리스트도 아닌, 싱어송라이터도 아닌 그가 15년간 스타 가수로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영민함 덕분이다.
“빅뱅의 ‘거짓말’을 듣고서 양현석씨를 떠올렸어요. 선뜻 프로듀싱까지 맡아주겠다고 하더군요.”
YG가 소속 가수가 아닌 가수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앨범에는 YG 소속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타이틀곡 ‘디스코’는 원타임의 테디와 스토니 스컹크의 쿠시가 공동 작곡했다. ‘파티’는 빅뱅의 지 드래곤과 유건형이 공동 작곡했고, ‘흔들어’ ‘셀러브레이션’은 양현석이 작사하고, 페리가 작곡했다.
앨범에서 YG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엄정화는 특유의 요염한 보컬과 이미지 메이킹을 과시하며, 자기 앨범의 안방을 YG에 내주지 않았다. 힙합 물이 많이 빠진 것도 그의 주문대로였다.
엄정화는 “1970년대 디스코가 아닌, 현대적 디스코로 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앨범 컨셉트에 맞게 의상도 미래 여전사 스타일의 퓨처리즘을 강조했다. 99년 다섯 번째 앨범에서의 금속성 의상과 사이버적 이미지와 비슷하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는 선배 가수 나미의 헤어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엄정화는 ‘눈동자’(1993년)로 데뷔한 이래 줄곧 음악을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이번 앨범에 대해 엄정화만의 카리스마와 도전이 다소 떨어진다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중성 또한 가수 엄정화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다.
그의 음악은 두 가지로 나뉜다.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익숙해하는 엄정화표 음악. 이번 앨범이 후자라면, 그가 구상하고 있는 열한 번째 앨범은 전자가 될 것 같다.
"다음 앨범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 밝힐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음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 드릴게요.”
빅뱅의 멤버 탑과 함께 출연한 뮤직비디오 ‘디스코’는 벌써부터 화제다. 음악과 영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팝의 여왕 마돈나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함께 한 ‘포 미니츠’(4 minutes)를 떠올리게 한다. 안 그래도 그에게는 늘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가 붙어왔다. 그도 “그런 수식어가 영광인 동시에, 채찍질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