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1500원으로 산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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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윤조현 16기 주부통신원

한달 전쯤 '아름다운 가게'에 들렀다가 두돌 된 아들 손에 쏙 들어갈 만한 작은 사자인형 하나와 만화책 한권을 사왔다. 책은 1000원, 인형은 단돈 500원이었다.

남편의 미국 유학시절 벼룩시장을 요긴하게 이용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찾아갔는데 쓸 만한 물건을 찾아내 기분이 좋았다.

인형을 깨끗이 빨아 아이 손에 들려주니 한참을 갖고 놀며 좋아했다. 만화책 역시 남편과 함께 읽으며 며칠 동안이나 낄낄대곤 했다.

그 며칠 뒤, 외출했다 돌아오는데 아들 또래의 여자 아이가 놀이터 땅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있었다. 친구와 나눌 줄 아는 것도 공부다 싶어 아들에게 사자인형을 친구에게 줘 보자고 했다.

다행히 아들 녀석은 망설이지도 않고 친구에게 인형을 불쑥 내밀었다. 사자인형을 건네받은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나의 칭찬을 듬뿍 받은 아들 녀석은 개선장군처럼 우쭐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며 얘기를 전해들은 남편도 "두번 죽이는 거예요~"라는 요즘 유행어를 떠올렸는지 아들에게 "사자를 두번 살렸네~"라는 기분 좋은 농담을 했다.

그 때문일까. 내가 필요없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인터넷 벼룩시장을 통해 파는 걸 볼 때마다 "뭐 그런 것 까지…"하며 나를 깍쟁이 취급하던 남편은 요즘엔 '알뜰 살림꾼'이라며 한껏 치켜세운다.

돈가치가 떨어지면서 요즘은 길거리 거지도 100원을 건네면 되레 성을 낸다고 한다. 하지만 1500원으로 산 재활용품은 우리 가정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즐거움과 나눔의 기쁨까지 덤으로 가져다 주었다.

윤조현 16기 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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