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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 부은 아내 손이 내 벼랑 끝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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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촛불시위 59일째. ‘미친 소 OUT’을 외치는 함성소리에 묻힌 채 대한민국 경제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난해 말 배럴당 85달러였던 국제유가(두바이유)는 5일 140.7달러까지 치솟았다. 6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나 뛰어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4일 코스피지수는 1600선 아래로 추락했다. 넉 달 만의 최저치다.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산층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중앙SUNDAY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한계 중산층’ 김병철(59·왼쪽 사진)씨의 고백을 통해 2008년 7월 대한민국 중산층의 두려움과 희망을 들여다봤다.

‘학원까지 시내버스 왕복 두 차례 3600원+자판기 커피 한잔 200원=3800원’.
오늘 쓸 수 있는 돈의 전부다. 지난달 말 옛날 직장인 동화은행 동우회 모임이 있었다. 나는 1998년 6월 퇴출된 동화은행의 지점장이었다. 10년 전 그 시절 그리운 얼굴들이 모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지금은 옛 추억을 돌이킬 감정적 여유도, 돈도 없다. 집 부근 지하상가에서 칼국수집을 하며 한 달에 160만원을 벌어오는 아내 신휘(53·오른쪽 사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가늘고 고왔던 아내의 손마디는 칼국수집 6년에 관절염으로 퉁퉁 부어 올랐다. 의사는 식당 일을 계속하면 관절염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삶이 이렇게까지 몰려본 적이 없었다. 올해 우리나이로 예순. 가진 재산이라고는 32평 아파트 전세금 1억8000만원이 전부다. 지난달만 해도 나에겐 39평짜리 아파트가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생명보험사에서 빌린 돈 1억5000만원의 이자가 8%대까지 올라가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2년 전만 해도 4%대였다. 지금은 한 달 이자만 100만원. 아파트 관리비 30만원 내고, 시장 좀 보고 나면 안산에서 자취하는 대학 졸업반 둘째 놈에게 부쳐줄 생활비도 없다. 마지막 보루,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아파트를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칼국수집의 주원료인 밀가루 값도, 매일 경기도 일산의 농수산물 도매시장까지 오가는 레조 승합차의 LPG값도 턱없이 올랐다. 지난 연말 1주일에 7만2000원가량 들던 밀가루 값은 8만5000원으로 올랐다. 탱크 가득 채우면 4만7000원 하던 LPG도 이제는 5만9000원은 줘야 한다. 바지락은 40%, 표고버섯은 60% 넘게 값이 뛰었다. 이래저래 식당 수입이 지난해보다 20%는 준 것 같다. 아내는 “식당을 운영해 버는 돈이 주방 아주머니가 받는 월급과 거의 차이가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버티는 셈이다. 1년 전만 해도 지하 식당가에서 점포 열 곳이 모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집과 다른 한 곳만 남았다. 그나마 빌딩 주인이 월세 40만원은 놔두고 관리비 50만원만 내라고 배려해 이제껏 버티고 있다. 주인도 상가가 죽어가는 것이 두려운 게다. 그저께 늦은 밤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식당이 더 어려워지면 더 조그만 곳으로 옮겨 반찬가게나 해야겠어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는 애써 아내의 눈을 외면했다.

TV 뉴스엔 촛불시위 얘기가 벌써 몇 달째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성급했던 것은 분명 맞지만 지금은 두렵기만 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지금 내 신세가 그렇듯, 나라도 이대로 가다간 제2의 경제위기가 올 판국이다.

내 삶의 유일한 탈출구는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이다. 오는 10월 시험에만 합격하면 아내와 함께 전셋값은 물론 생활비도 얼마 안 드는 지방의 중소도시로 내려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쉽진 않겠지만 부동산중개소를 열어 그냥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도로 살련다. 아내의 얼굴에 젊은 날의 미소를 되찾아주는 것, 그 희망이 지금의 지친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는 이 나이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학원에 앉아 책을 들이파는 것도 그 힘 때문이다. 한 끼 사먹는 돈이 아까워 점심도 집에 와 먹는다.

아, 나에겐 또 하나의 희망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두 아들이다. 큰아들 성룡(26)이는 의대를 졸업하고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이다. 연세대 의대를 마다하고 포천 중문의대를 지원해 대학 6년간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은 녀석이다.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하는 둘째 석훈(24)이도 이제 곧 졸업이다. 벌써 선배와 컴퓨터 디자인 벤처기업을 차렸다. 한 번도 말은 안 했지만, 내색조차 한 적 없지만 너무 고맙다. 잘 자라줘서. 그리고 잘 키워줘서.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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