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까지 시내버스 왕복 두 차례 3600원+자판기 커피 한잔 200원=3800원’.
오늘 쓸 수 있는 돈의 전부다. 지난달 말 옛날 직장인 동화은행 동우회 모임이 있었다. 나는 1998년 6월 퇴출된 동화은행의 지점장이었다. 10년 전 그 시절 그리운 얼굴들이 모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지금은 옛 추억을 돌이킬 감정적 여유도, 돈도 없다. 집 부근 지하상가에서 칼국수집을 하며 한 달에 160만원을 벌어오는 아내 신휘(53·오른쪽 사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가늘고 고왔던 아내의 손마디는 칼국수집 6년에 관절염으로 퉁퉁 부어 올랐다. 의사는 식당 일을 계속하면 관절염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 삶이 이렇게까지 몰려본 적이 없었다. 올해 우리나이로 예순. 가진 재산이라고는 32평 아파트 전세금 1억8000만원이 전부다. 지난달만 해도 나에겐 39평짜리 아파트가 있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생명보험사에서 빌린 돈 1억5000만원의 이자가 8%대까지 올라가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2년 전만 해도 4%대였다. 지금은 한 달 이자만 100만원. 아파트 관리비 30만원 내고, 시장 좀 보고 나면 안산에서 자취하는 대학 졸업반 둘째 놈에게 부쳐줄 생활비도 없다. 마지막 보루,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아파트를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버티는 셈이다. 1년 전만 해도 지하 식당가에서 점포 열 곳이 모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집과 다른 한 곳만 남았다. 그나마 빌딩 주인이 월세 40만원은 놔두고 관리비 50만원만 내라고 배려해 이제껏 버티고 있다. 주인도 상가가 죽어가는 것이 두려운 게다. 그저께 늦은 밤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식당이 더 어려워지면 더 조그만 곳으로 옮겨 반찬가게나 해야겠어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는 애써 아내의 눈을 외면했다.
TV 뉴스엔 촛불시위 얘기가 벌써 몇 달째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성급했던 것은 분명 맞지만 지금은 두렵기만 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지금 내 신세가 그렇듯, 나라도 이대로 가다간 제2의 경제위기가 올 판국이다.
내 삶의 유일한 탈출구는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이다. 오는 10월 시험에만 합격하면 아내와 함께 전셋값은 물론 생활비도 얼마 안 드는 지방의 중소도시로 내려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쉽진 않겠지만 부동산중개소를 열어 그냥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도로 살련다. 아내의 얼굴에 젊은 날의 미소를 되찾아주는 것, 그 희망이 지금의 지친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는 이 나이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학원에 앉아 책을 들이파는 것도 그 힘 때문이다. 한 끼 사먹는 돈이 아까워 점심도 집에 와 먹는다.
아, 나에겐 또 하나의 희망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두 아들이다. 큰아들 성룡(26)이는 의대를 졸업하고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이다. 연세대 의대를 마다하고 포천 중문의대를 지원해 대학 6년간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은 녀석이다.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하는 둘째 석훈(24)이도 이제 곧 졸업이다. 벌써 선배와 컴퓨터 디자인 벤처기업을 차렸다. 한 번도 말은 안 했지만, 내색조차 한 적 없지만 너무 고맙다. 잘 자라줘서. 그리고 잘 키워줘서.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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