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융합기술’로 글로벌 시장 진출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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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35면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7월 1일 국내에서 휴대전화 서비스가 처음 시작됐다. 84년 ‘카폰’으로 불리는 차량용 서비스로 시작된 이동전화 서비스가 서울올림픽을 즈음해 대중화 시대의 물꼬를 튼 것이다. 벽돌 크기만 한 휴대전화의 가격은 400만원이나 됐다. 당시 포니 자동차가 500만원 정도였으니 자동차 한 대를 손에 들고 다닌 셈이다.

이처럼 휴대전화는 부의 상징으로, 희소성 때문에 거리에서 사용하면 뭇사람의 시선을 받곤 했다. 그러나 실상은 통화가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당시 한 라디오 방송은 서울 시내에서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한 지역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서비스 첫해인 88년 784명에 불과했던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97년 개인휴대통신서비스(PCS)의 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늘어나 98년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008년 현재 가입자 수는 4500만 명에 달해 인구 대비 93%가 넘는 보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1인 1휴대전화 시대가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97년은 이동통신사들에 참으로 행복한 한 해였다. 이동통신사마다 밀려드는 고객의 가입 신청을 처리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했다. 이 같은 이동통신 서비스의 성장은 시스템·단말기·콘텐트 등 전후방 연관산업의 동반 성장을 가져오면서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시키는 데 일조했다. 현재 세계 휴대전화 사용자 10명 중 4명이 한국산 제품을 쓴다. 20년 전 미국 모토로라 단말기를 수입해 쓰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마저 느껴진다.

통신기술 측면에서도 디지털 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한 것을 비롯해 단말기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디지털멀티미디어이동방송(DMB), 이동하면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와이브로(WiBro), 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등을 속속 선보이며 세계 정보통신 기술을 선도해 왔다. ‘애인 없인 살아도 휴대전화 없인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TV·영화를 보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즐기며, 해외에 있는 친구와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영상통화 덕을 톡톡히 보곤 한다. 얼마 전 출장차 두바이에 갔는데, 사막에 지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혼자 보기 아쉬운 마음에 아내에게 영상전화를 했다. 아내는 늘 무뚝뚝하기만 했던 나에게 감동했는지 눈물까지 내비쳤다. 전화 한 통으로 그동안 잃었던 점수를 한꺼번에 만회한 것 같아 뿌듯했다. 이처럼 휴대전화는 사람 사이의 정과 온기까지 전해주는 소중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이동통신업계는 스무 돌의 화려한 성인식을 뒤로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의 신화를 열어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20년이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 네트워크를 실현하는 ‘IT 코리아’를 만드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20년은 대한민국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선두주자로 도약하는 ‘글로벌 코리아’를 만드는 시대로 삼아야 한다.

영국의 통신회사 보다폰(Vodafone)은 36개국에서 2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해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싱가포르의 싱텔(SingTel) 역시 20개국에서 올리는 해외 매출이 국내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이들 회사는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시장의 벽은 두텁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20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서비스 능력은 세계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 국내 업계도 글로벌 시장, 특히 신흥시장에 적극 진출해 지난 20년간 갈고닦은 성공 인자를 심어야 한다.

앞으로 이동통신은 모바일로 확장되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산업과의 컨버전스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경험해 새로운 경쟁환경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앞서 말한 글로벌 전략에 더해 이러한 컨버전스 능력을 십분 발휘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면 앞으로 20년, 아니 그 이후에도 IT는 우리 경제발전의 성장엔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비극적 사랑을 그린 뮤지컬 영화 ‘물랭 루주(Moulin Rouge)’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를 즐겁게 해줘’라는 외침이 있는 한 쇼는 계속돼야 한다.” IT 강국의 위상을 지켜 나가고 더 나은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의 외침이 있는 한 IT의 새로운 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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