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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촛불 ‘직접 소통’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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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03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5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과 태평로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는 지난달 10일 열린 ‘100만 촛불 대행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뉴시스

5일 청와대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양측에선 대표자 면담이 추진됐다. 촛불시위를 주도해온 국민대책회의 대표단이 이날 오후 청와대를 방문해 5대 요구사항을 전달할 것이란 얘기였다. 면담의 성사는 60일간 이어졌던 촛불집회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정무수석실-대책회의 ‘대화 라인’ 가동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책회의 측이 청와대 면담을 요청해 왔다”면서 “맹형규 정무수석과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이 이들을 만나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회의 측에서도 “대표단이 오후 8시30분 청와대를 방문해 요구사항을 전달할 것”이라고 면담 계획을 확인하기도 했다.

대표단은 시민단체 관계자 5명과 천주교·기독교·불교·원불교 등 4대종단 관계자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청와대 주변에선 “이번 주말 집회를 끝으로 촛불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다.

그러나 이날 면담은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청와대 측은 오후 9시쯤 “일단 없던 일로 해달라”고 정리했다. 대책회의 측도 “청와대 측에서 ‘책임 있는 인사가 건의문을 받을 입장이 못 된다’고 알려와 방문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서 책임 있는 인사는 맹 수석이란 후문이다.

양측의 면담 추진과 좌초는 그 자체만으로 뉴스였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상황은 지난주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달 29일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과격 시위’ ‘강경 진압’ 공방이 최고조에 달한 뒤 30일 검찰까지 전면전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열었다. 시위가 비폭력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기독교와 불교계의 시국기도회·법회와 각계 원로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정부와 대책회의·종교계의 물밑 대화에 시동이 걸린 것은 이 즈음이었다. 특히 맹형규 신임 정무수석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대화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이 양측을 오가는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비서관은 서울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대표, 녹색교통운동 사무총장 등을 지낸 노동·시민운동가 출신. 임 비서관은 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와 시국법회 공동추진위원장인 수경 스님 등 종교계 인사와 박석운 진보연대 운영위원장, 남윤인순 대책회의 운영위원(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등을 잇따라 만났다.

청와대와 정부·한나라당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만난 데 이어 맹 수석이 종교계 인사들을 접촉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취임 첫날인 4일 조계종부터 찾았다. 특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대책회의 측에 ‘직접 대화’를 제안한 데 이어 종교계 인사와 각계 원로를 광범위하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진전된 것은 이번 주 중반부터. 대책회의 측 입장에도 차츰 변화가 생겼다. 촛불집회가 두 달간 계속되면서 가중된 피로감이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협상의 쟁점은 대책회의·종교계 대표가 내는 건의서를 청와대에서 누가 받느냐로 모아졌다.

대책회의 측이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건의문을 받을 것을 주장했으나 청와대 측은 난색을 표시했다. 청와대의 내부 절충 끝에 맹 수석이 대표들을 만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촛불시위 계속 여부를 둘러싼 이견이 막판에 발목을 잡았다. 청와대 측이 “촛불을 끄는 것을 선언하는 조건으로 맹 수석이 대표들을 면담할 것”이라고 제시한 데 반해 대책회의 등은 “촛불을 끈다고 선언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특히 대책회의 내부에서 “촛불시위를 전면 중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로선 쇠고기 수입 재협상 등 요구 사항들이 한결같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대책회의로서도 맹 수석이 요구할 예정이었던 ‘촛불집회 즉각 중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소통은 있었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셈이다.

이날 면담 불발로 양측의 물밑 대화가 완전히 단절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를 계속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언제까지 시위를 이어갈 수는 없는 만큼 대책회의가 좀 더 양보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면담 추진이 촛불 정국의 마무리 수순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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