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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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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용병(傭兵)의 역사는 고대 오리엔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몸을 재산으로 돈을 버는 용병은 매춘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용병제에 의존했던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1차 포에니전쟁 후 급료를 받지 못한 12만명의 용병이 일으킨 반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시민만으로 병력을 충당할 수 없게 되면서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고용한 서로마제국은 467년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무너졌다.

중세 유럽의 전쟁은 주로 용병들에 의해 이뤄졌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용병대장들이 전쟁을 질질 끄는 적도 있었다. 15~17세기 유럽에서 맹위를 떨친 용병은 스위스 용병과 란즈크네흐트(Landsknecht)라는 독일 용병이었다. 지금도 로마 교황청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 용병은 먹고 살게 없던 당시 스위스의 최대 수출산업이었다. 이른바 '피의 수출'이다.

용병의 전성시대는 '국민군'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다. 1792년 9월 20일 오스트리아.프로이센 동맹군과 맞서 불리한 싸움을 벌이던 프랑스 혁명군 진영에서 갑자기 "프랑스 국민 만세"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프랑스 국왕 만세"가 아니었다. 유럽 역사상 첫 국민군의 탄생이다. 당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날, 여기에서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고 기록했다.

용병산업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 곳곳에서 소규모 국지 분쟁이 늘어나면서 되살아났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피터 싱어는 세계 용병산업의 규모를 1000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요즘 용병들의 주무대는 이라크다. 이라크 내 용병은 1만여명으로 영국군보다 많다. 미국도 폴 브레머 군정 최고행정관의 경호를 이들에게 맡기는 등 용병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미군이 1989년 210만명에서 현재 140만명으로 줄어든 때문이다. 얼마 전 이라크 팔루자에서 시체가 참혹하게 훼손된 미국인 4명도 세계 최대의 용병 회사를 꿈꾸는 블랙워터의 직원들이다.

아무리 보조적인 역할이라 하더라도 전쟁에 용병을 참여시키는 것은 전쟁의 명분을 떨어뜨리는 국가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한편으론 이라크전쟁이 석유라는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 용병의 이라크전 참여가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