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오대산 북대 미륵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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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오대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가 북대(北臺)미륵암(彌勒庵)이다.해발 1천3백쯤에 있으니 남한에서도 한두번째의 고지리라.미륵암의 역사 또한 오대산의 다른 암자들처럼 자장율사가서기 705년께 띳집을 지어 수행처(修行處)로 삼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암자로 오르는 길에 잔설이 희끗희끗 보인다.산밑과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듯 잔설이 그대로 쌓여 있다.그런가 하면 갑자기 햇볕이 자취를 감추고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기도 한다.눈을 부릅떠야만 길이 제대로 보일 지경이다.
기침이 콜록콜록 터져나온다.나옹(懶翁)선사가 고려말 숨어지냈던 성지(聖地)를 함부로 밟지 말라는 경고인가.그는 고려의 왕사(王師)로 부름받기 전까지는 이곳 북대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숨어 살았다.그가 지어 불렀다는 시가 귓가에 들려 오는 것만 같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티없이 살라 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서대가 욕심을 버리고 사는 수행처라면 북대는 무뎌진 의지와 신념을 송곳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주는 터다.바람이 한번휘저으면 나뭇가지만 부러뜨리는 게 아니라 번뇌의 헛가지도 여지없이 꺾어버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눈을 바로 뜨지 않으면 거센 삭풍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듯 자신의 일대사(一大事)하나만 붙들고 살라는 자연의 준엄한 당부가 아닐 수 없다.그럴지도 모른다.지난 일에 얽매여 이러쿵 저러쿵 번민하고 곱씹는 게 이 암자에서는 거추장스러 운 사치일 뿐이다. 녹차를 들다 말고 입을 여는 암주인 화광(和光)스님의한마디가 가슴에 녹차향처럼 남는다.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외로운 섬 같지만 수행자는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 아닙니까.그때야말로 살맛이 나고 서릿발 같은 기상이 북돋워지지요.』 스님이 말하는 기상이란 눈 부릅뜨고 길을 찾는 구도(求道)의 의지를 말함이리라.그렇다.타성의 껍질을 벗고 생살이 돋는 삶이란 온 마음으로 광풍 속이지만 눈 부릅뜨고길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선인들중 눈 밝은 분이 이렇게 말 하지 않았던가.생이란 그 전부를 드러내는 것,죽음 또한 그 전부를 드러내는 것(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
상원사에서 승용차로 20분,걸어서는 1시간 이상 걸린다.겨울에는 승용차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공원관리 사무소 요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또 눈비가 올 때는 위험한 비탈길이므로 승용차보다 걸어 가는 게 안전하다.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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