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ERIReport] 화주 - 차주, 인터넷 직거래망 구축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간신히 물류대란을 막았다.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물류대란이 본격화됐더라면 심각한 국면에 처했을 것이다. 서둘러 운송비를 대폭 올려줘 초장에 잠재운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좌불안석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다. 당분간 잠잠해졌을 뿐 언젠가는 다시 폭발할 휴화산이라는 지적이다. 대체운송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물류대란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까.

◇다단계구조를 바꿔라=화물차 파업의 근본 원인은 차주의 저소득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컨테이너나 트레일러 등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하는 일반화물차량의 차주들조차 한 달 평균소득이 184만원에 불과하다. 수입이 줄어 소득이 낮아진 건 아니다. 화물차 한 대당 운송수입은 꾸준히 늘고 있다. 문제는 지출이다. 특히 지입료와 주선료는 화물차 주인(차주)들이 화물 주인(화주)과 직접 화물을 거래한다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그런데도 전체 차량 운행비(641만원)의 10%에 달할 정도로 많다. 지입료는 차주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지불하는 돈이다. 운송업체에 차를 갖고 들어가 회사 명의로 영업을 하는 대가다. 주선료 역시 차주들이 주선업체들을 통해 화물을 받기 때문에 지불하는 수수료다.

만일 화주와 차주가 직접 거래한다면 화물시장은 ‘화주-차주-수취인’ 구조로 이뤄진다. 그런데 여기에 주선업체와 운송회사가 끼면 그만큼 차주의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선업체 등을 없앨 수도 없다. 차주들이 영세하기 때문이다. 전체 화물자동차 33만6000대 중에서 90% 이상이 차주가 한 대씩의 차량을 갖고 운송업체에 지입제 방식으로 들어가 운행하고 있다. 화주가 직접 차주를 상대하기가 아주 어렵게 돼 있다. 그나마 주선업체나 운송업체 중 하나만 끼면 낫다. 법적으로 ‘화주-주선업체(또는 운송업체)-차주-수취인’식의 2단계 구조는 합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선업체가 다시 주선업체나 운송업체를 끌어들이는 등 3단계 이상 구조로 화물이 운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차주가 부담하는 수수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30% 이상을 주선업체 등에 수수료로 지급한다.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화주와 차주가 직접 만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물류정보망 구축이 한 방안이다. 5년 전부터 이 사업을 하고 있는 SK에너지의 내트럭프렌즈 사업부 차규탁 본부장은 “화주가 화물정보를 올리면 차주들이 이를 공유해 막바로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 시스템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아직은 화주와 차주에게 인기가 없다. SK 외에도 5개사가 더 뛰어들었지만 SK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만뒀거나 개점휴업 상태다. 국토해양부 백승근 과장은 “화주들은 자신들의 화물정보가 공개될 것을 우려해 정보망에 가입하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한다. 차주들은 인터넷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없다. 차 본부장은 “화주가 가입할 수 있도록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고, 차주들에 대한 정보기술(IT) 교육을 지원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둘째는 지입 차주 등 운송업체의 대규모화다. 인하대 김태승 교수는 “화물시장에 차가 너무 많다”며 “물류기업을 대형화하는 물류산업 합리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업체 간 인수합병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운송업체가 대규모화되면 화주와 직접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다단계 문제가 해소된다. 정승주 센터장은 또 “지입제를 해소하는 것도 과제”라며 “운송업체의 회원으로 가입해 수익을 배분받는 조합형 대규모 운송회사도 생각해봄 직하다”고 설명했다.

◇화주는 상생의식 가져야=한 주선업체 관계자는 “화주들은 영세한 운송업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설명한다. 화주들은 종종 화물정보를 TRS라고 하는 무전기를 통해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때 수천 명 이상의 차주나 운송업체들이 서로 하겠다고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자연히 덤핑가격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기업 화주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이호근 전북대 교수는 대기업 화주가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물류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대기업들이 운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주선업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설립한다”면서 “그러나 이들은 교섭에 실질적인 권한이 없어 협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대기업 계열사인 물류회사들이 다단계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계열 물류업체들이 화물운송 능력이 모자라 이를 아웃소싱(외주)하는 과정에서 주선회사와 운송회사를 여러 단계에 걸쳐 활용한다는 것이다. 전용욱 중앙대 교수는 “대기업 화주들과 화물연대가 서로 상생하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서로 대화채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조만간 설립하기로 한 표준요율심의위원회 같은 ‘정부-화주-차주’의 3자협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 교수는 “화물연대를 단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차주들이 한국처럼 영세한 데도 트럭협회로 결집돼 있고 정부가 이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구조다(박스 참조).

◇철도 등 대체운송 수단도 활성화해야=화물수송이 도로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컨테이너 수송의 경우 도로수송 분담률이 90%에 가깝다. 철도수송은 9% 남짓에 불과하고, 연안 해상수송은 1%밖에 안 된다. 화물연대가 파업할 경우 물류대란이 일어나는 건 도로를 대체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철도와 연안 수송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종합적인 국토 물류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입선을 가설해 항구까지 철도를 연장하고, 항만에서는 배를 통해 다른 항구까지 화물을 수송하는 연결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욱·이봉석 기자


일본 경우엔 정부·운송업체 신뢰 바탕으로 제도 개선 중

일본에선 지금 정부와 전일본트럭협회가 만든 ‘트럭운송업의 하청·하주 적정거래 추진 가이드라인’과 ‘트럭운송업의 연료비 추가 인상제 도입 긴급 가이드라인’에 대한 설명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대상은 전국의 주요 화주단체들이다.

트럭운송업이 날로 심화되는 과당경쟁에 유가폭등이 겹쳐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조치다.

트럭수송은 일본 국내화물 수송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트럭 운송업자는 6만2000개 사, 시장은 13조 엔(약 130조원), 트럭운송 사업 종업원 수는 125만 명, 영업용 트럭 대수는 140만 대에 이르는 등 기간산업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문제는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운송사업자의 규모가 영세하다. 가령 1990년 규제가 완화된 이후 3만 개 이상의 트럭 운송업자가 신규 진입했는데 그중 90% 정도가 보유차량이 5대 미만인 영세사업자였다. 과당경쟁으로 하주·원청업자가 정하는 저운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어 운임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운송구조도 한국처럼 다단계로 돼 있어 5~6차 이후의 하청업체가 실제 운송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갖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화주에서 실제 운송사업자에까지 계약이나 수송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 원청업자로부터 자신들의 능력과 관계없이 무조건 일거리만 따내 하청운송을 행하는 운송사업자(이른바 물장사)도 생겨났다.

또 실제 운송은 하지 않고 비용관리만 행하는 원청업자도 존재하는 등 시장구조가 매우 복잡해진 상태다. 그러다 보니 사업자 간 부적절한 거래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오래전 전일본트럭협회와 같이 ‘화물자동차운송 적정화 사업 실시기관’을 만든 데 이어 지난해부터 운송안전관리제 도입과 감사 강화, 운행관리제도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 적정거래와 적정운행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적정화사업 지도요원’도 활동 중이다.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는 하주와 원청업체는 공정거래법상 ‘독점금지법’으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하청업체 간 거래는 ‘하청법’으로 감시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 설명회가 열리고 있는 가이드라인들은 이런 제도를 종합적으로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트럭 운송업자가 손잡고 부단히 제도와 관행을 고쳐 나가면서 이를 화주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게 한국과 다른 점이다. 정부와 운송업체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있다는 얘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