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김형오 국회의장 후보자, ‘승자 독식’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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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최훈 정치데스크

18대 국회 임기가 지난달 29일 개시됐다. 그러나 한 달여간 쇠고기 정국이 이어지며 개원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다수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2일 의원총회를 열어 5선의 김형오(61·부산 영도) 의원을 국회 의장 후보자로 선출했다. 김 후보자의 선출 일성은 “의장 직속으로 개헌 자문기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개헌을 논의하겠다”는 것이었다. 27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김 후보자와 만나 1시간30분 동안 개헌과 국회 개혁, 각종 정국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사진=조용철 기자]

-의장 후보가 됐지만 아직 개원식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하도 이 상태가 오래돼서…(웃음). 안타깝다. 내 개인 문제를 떠나 헌법 부재 상태를 초래한 데 대해 국민께 면목이 없다. 후세 학자들과 외국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두렵다.”

-최근 쇠고기 고시가 관보에 게재되면서 야당은 ‘등원 명분이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원론적 입장에서 국회 등원은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원의 헌법적 책무다. 나라가 어수선할수록 국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스스로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 2008년 6월, 한국의 헌정시계는 고장이 나 있다.”

-촛불시위와 관련, 대의민주주의가 실종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부정보다는 보완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 이를 항복이나 탄압의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두 차례에 걸친 사과, 추가협상으로 성난 민중들이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강경하다. 지금 단계는 촛불시위 첫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여기에 적절한 정부 대응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국회가 열려서 (강경한)이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일이 잘 귀결될 수 있다.”

-공권력이 너무 눈치를 봐서 나라 체통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 각종 개혁정책들이 후퇴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1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게 해 준 국민들의 염원을 잘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되면 이런 걸 할 것이란 보편적 기대감이 있었다. 촛불시위로 인해 그것조차 흐물해져 버리면 안 된다. 정권이 틈을 보이면 개혁을 못 한다. 개혁에 있어선 우선순위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중점적으로 해야 할 부분부터 먼저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사태가 온 요인은 뭔가 .

“대선의 양상이 특이했다. 10년 만에 좌에서 우로 온 정권교체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이 있어야 했다. 누가 후보가 되리라 상상도 못할 예측 불허 경선의 후유증도 만만찮았다. CEO 출신 후보인 이 대통령이 당시 상황에서 BBK 특검을 수용 않을 수 없을 만큼 도덕적 논란도 있었다. 안팎에서 늘 흔들려는 세력이 잠복한 상황에서 530만 표 차이라는 환상, 장밋빛 실루엣 때문에 이런 요인을 간과한 것 같다.”

-근원적 해법은 뭔가.

“본질은 신뢰성의 문제다. 국민과 정권 간 신뢰의 균열이 발생했다. 쇠고기 협상도 초기 첫 협상에 대해 진솔하게 국민에게 다가갔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거다.‘쇠고기 괴담 아니냐’고 한 당국자들 입장에선 어처구니없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태도가 국민들로 하여금 ‘무시당한다’는 분노를 갖게 했다. 국민과의 소통은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소통이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본지 조사에 따르면 18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81%가 임기 내 개헌을 지지했다.

“1987년 헌법은 직선제 관철과 장기집권 불가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달성했다. 이제는 21세기 글로벌한 국제사회에 맞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일단 17대 국회 말 노무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얘기했을 때 각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18대에 들어서면 개헌 논의를 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이 없고, 의원들 스스로도 거수기가 되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하다. 개헌이 정략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란 얘기다. 이번 국회 임기 초반엔 전국적 주요 선거도 없다. 하반기 2년은 대권 주자들이 각 당에서 등장, 권력적 욕구가 충돌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바로 개헌의 적기다.”

-의장이 되면 직속으로 자문기구를 두겠다고 했는데.

“개헌이 시급한 만큼 개헌의 방향 등 기초 연구자료를 전문가들에게 준비하도록 하겠다. 각 당으로부터 추천받은 교수나 정치학자 등 전문가 15명 내외로 정말 제대로 된 개헌 기구를 만들 생각이다.”

-18대 국회 하반기에도 개헌이 가능할까.

“ 국민과 정치권의 동의가 이뤄지면 2010년 지방선거 이후로도 좀 더 시간이 늦춰질 수는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지금부터 2년 안, 즉 18대 국회 전반기 내에 국민투표까지를 포함해 개헌을 완전히 완료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권력구조가 있나.

“(의장 후보자 입장에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의원내각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지금처럼 내각제와 뒤섞인 형태가 아닌 분명한 대통령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세 가지 측면에서 온다고 본다. 첫째 국회 등 ‘선출된 권력’이 국정원·검찰 등 ‘임명된 권력’에 의해 힘을 못 쓸 때이다. 둘째는 같은 선출된 권력끼리도 불균형이 생길 때다. 대통령에게 국회가 맥을 못 추는 경우다. 셋째는 양대 선출된 권력이 대중에 의해 꼼짝 못하는 때다. 지금껏 우리나라에선 첫째와 둘째 위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셋째의 단계다. 대의민주주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그건 권력을 나누지 않아서다. 근대화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그간엔 권력을 집중시켜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선진국은 그 어디에도 권력 독점이 없다. 우리는 530만 표 차로 당선됐든 40만 표 차로 당선됐든 모두 ‘승자 독식’으로 해 왔다. 이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권력을 나눠야 한다.”

-권력구조 외에 바뀌어야 할 헌법조항은 .

“경제와 복지, 인권 개념도 많이 고쳐야 한다. 경제의 경우 이념적으로 혼재돼 있다.”

-너무 많은 걸 다루면 개헌이 힘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리가 있다. 물론 원포인트 개헌이 쉽다. 그러나 그럴 경우 헌법을 너무 자주 고쳐야 할 상황이 오고, 헌법적 권위를 상실할 수 있다. 권력구조만 고쳐선 갈수록 다원화되는 시대 상황을 반영할 수 없다.”

-의장으로 확정되면 현 국회 시스템 중 가장 고치고 싶은 것은.

“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 왜 기자들이 매일 사진을 찍는데도 의원들이 회의장 자리를 지키지 않겠나. 스스로도 흥미와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대정부질문제, 국정감사·조사제, 청문회제, 예산결산 심의 등을 모두 뜯어고쳐야 한다. 가장 우선으로 할 것이 ‘상시 국회’다. 왜 굳이 시기를 정해 놓고 국회를 여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한 입장은.

“해야 한다. 그러나 밀어붙이기 식은 안 된다.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 FTA 문제는 전원위원회를 소집해 모두 얘기하게 하고, 자유투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필요에 따라 비밀투표를 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역대 입법부와 국회의장이 행정부와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가 국회다우려면 의장이 의장다워야 한다. 행정부가 잘 한다면 협조하겠지만 반대 경우엔 분명히 따지겠다. 의원 개개인이 대통령에 눌리지 않고 헌법기관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겠다. 그러려면 국회의장이 꼿꼿해야 한다. 포퓰리즘 차원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게 뭔지 전하고 관철하는 데 소신을 발휘하겠다.”

정리=이가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김형오 국회의장 후보자는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사 신동아 기자를 지냈다. 78년 외교안보연구원의 연구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82~92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에서 일했다. 92년 민자당 소속으로 부산 영도에서 당선된 뒤 현재까지 5선에 이른다. 국회 과기정통위원장, 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등 국회와 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대선 경선 땐 중립을 표방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 인수위 부위원장에 기용됐다. 18대 총선 직후 당내 경선을 통해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정보화 사회의 도전과 한국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만큼 디지털 마인드를 지녔다. 평소 내각제를 지지해 왔으며 국회의장이 되면 가장 먼저 할 일로 개헌을 꼽아 왔을 정도로 권력 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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