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 상영작] 저지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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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 걸★★★☆ (만점 ★ 5개)

감독 : 케빈 스미스
주연 : 벤 애플릭.리브 타일러
등급 : 12세 장르 : 코미디
20자평 : 여피족이 헌신적 아버지로 변신!

만약 선택이 가능하다면, 당신은 다음 중 어떤 삶을 고르겠는가. ① 20대에 이미 화려한 연예계에서 홍보전문가로 성공해서 전망 좋은 개인사무실과 도심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삶. ② 30대 중반에 변두리 동네의 잡역부로 일하면서 퇴근 후 재롱 넘치는 딸 아이 손잡고 비디오 빌려보는 게 낙인 삶.

사실 이 질문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외적인 조건만 보면 ① 이 답인 듯 싶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주인공들은 대개 이기적이고, 그래서 알고 보면 고독한 인간들로 그려지게 마련이다. 현실에서도 ① 이 ② 보다 더 행복한 삶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저지 걸'은 이렇게 반문하는, 혹은 반문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다. 지금 선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주제를 발랄한 에피소드로 설파한다.

물론 뉴욕 맨해튼에서 잘나가던 주인공 올리(벤 애플릭)가 강 건너 뉴저지의 잡역부가 된 것이 자의는 아니었다. 아내(제니퍼 로페즈)가 아기를 낳다 그만 세상을 떠나고, 졸지에 홀아버지가 된 올리는 홧김에 기자회견장에서 엄청난 말실수를 저질러 업계에서 매장당한다. 젖먹이 딸과 함께 역시 혼자인 아버지(조지 칼린)의 뉴저지 집에 얹혀 산 지 어느새 7년. 기저귀나 우유병은 졸업한 지 오래이지만, 아버지 노릇은 여전히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호기심 많고 당돌한 딸 거티(라켈 카스트로)의 깜찍한 발언 덕분에 관객은 적어도 두 번은 폭소를 터뜨릴 수 있다. 동네 비디오 가게 점원 마야(리브 타일러)와 올리의 만남도 육탄전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거티 때문에 편한 친구 사이로 방향을 틀게 된다.

뉴저지의 이런 평온한 삶 속에서 올리는 맨해튼의 삶으로 돌아가고픈 꿈을 버리지 못한다. 어렵사리 재취업의 기회를 잡지만, 딸 거티는 뉴저지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올리는 진정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영화의 제목으로 미루어 결론은 뻔할 듯 한데, 이 영화의 미덕은 이 뻔한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 풍기는 독특한 취향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너나없이 뮤지컬'캐츠'의 주제가를 부르는 학예회 무대에서 거티네 부녀는 엽기적인 뮤지컬의 한 대목을 당당히 불러 결국 박수를 받는다. 남들이 다 ① 을 찍는다고 해서 ① 이 자신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 이게 행복의 첫걸음이란 얘기로 보인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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