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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비타민] 황제증·잭슨병·뇌전증 … 간질병 새 이름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울에 사는 이모(29)씨는 경증 간질환자다. 3년 전 사회복지학 관련 대학원을 나와 한 사회복지관에 사회복지사로 취직했다. 3년 동안 별일 없이 지냈다. 하지만 올 초 복지관에서 2~3초간 정신을 잃는 발작을 했고 한 동료가 이를 봤다. 이 사실을 안 복지관 측은 이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씨는 “업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정도의 발작도 아닌데 해고됐다”며 “복지관에서조차 간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이러니 일반 직장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간질(癎疾·epilepsy)은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전기파가 뇌조직을 타고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국내 간질환자는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80%는 적절한 약물이 없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약물 치료만으로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간질은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질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상암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간질환자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5배나 된다. 간질협회 회원은 15개 장애단체 가운데 정신지체 다음으로 취업률·결혼율이 떨어진다. 보험회사는 간질환자의 보험 가입도 받지 않는다. 간질환자 안모(50)씨는 “평생 주홍글씨를 몸에 새기고 다닌다”고 말했다.

대한간질학회와 한국간질협회는 26일 외적인 증상만으로 질병이 잘못 인식돼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간질환자를 돕기 위해 질환 명칭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키로 했다. 1차 의견 수렴 결과 5가지 안이 나왔다. ▶카이사르와 나폴레옹이 간질환자였다는 데서 따온 ‘황제증’ ▶간질의 발병 메커니즘을 밝힌 영국 의사 잭슨의 이름을 딴 ‘잭슨병’ ▶뇌에 전기가 온다는 의미의 ‘뇌전증’ ▶뇌에 지진이 온다는 뜻의 ‘뇌진증’ ▶간질환자를 돕는 의료선교단체 이름(장미회)을 딴 ‘장미병’ 등이다.

간질협회 허균(아주대 신경과 교수) 회장은 “환자 상당수가 정상 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데도 ‘거품 무는 병’이나 ‘지랄병’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아 간질 병명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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